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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MBC '달콤한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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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MBC '달콤한 스파이'

입력
2005.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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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는 볼펜은 구실이구요. 목적은 형님을 어떻게 한 번 (손) 봐 버릴까,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렇다. 볼펜은 구실이다. 볼펜의 내용이 무엇이건, MBC ‘달콤한 스파이’(연출 고동선)에서 보여주고 싶은 건 평범한 여순경 순애(남상미)가 멋진 스파이 유일(데니스 오)과 사랑에 빠지고, 볼펜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휘말리는 과정 그 자체다.

볼펜은 전형적인 맥거핀(중요해 보이지만 실은 무가치한 존재로, 등장 인물을 사건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는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하지만 ‘달콤한 스파이’의 사람들은 보통의 스파이물처럼 맥거핀에 진지하지 않다.

보통의 추리ㆍ스파이물이 미스터리를 푸는 논리적인 과정에 재미의 핵심이 있다면, ‘달콤한 스파이’는 비논리적인 우연들이 정교하게 겹쳐 사건을 만드는 절묘한 전개와, 그로 인해 사람들이 벌이는 헛소동에 초점을 맞춘다. 순애가 볼펜을 가진 건 우연이고, 순애와 준(이주현)을 곤경에 빠뜨린 건 둘 사이를 질투하는 은주(유선)지만, 현철(김일우)은 자신이 일을 맡긴 범구(최불암)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달콤한 스파이’에는 추리ㆍ스파이물의 특성과 장르의 패러디가 공존한다. 사소한 사건을 통해 실마리가 제공되고, 이를 통해 사건을 추리하는 것은 장르의 공식 그대로지만, 정작 사건을 해결하는 건 황당한 우연들이다.

덕분에 진지한 스파이는 푼수끼 있는 여순경과 만나고, 그로부터 모든 무거운 ‘척’ 하는 것들에 대한 풍자와, 멋진 왕자님 같은 스파이와 평범한 여성의 상큼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또한 조연인 형사들의 대화도 평범하게 넘기지 않고 역동적인 촬영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연출 역시 발군이다.

‘달콤한 스파이’는 여러 장르의 공식에 익숙하고, 한 작품에서 코미디와 멜로, 미스터리를 모두 즐기려는 젊은 시청자들을 위한 매우 진보적인 드라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달콤한 스파이’는 스스로를 점점 어려운 게임에 밀어 넣는다. 우연이 겹치는 ‘달콤한 스파이’는 사건을 점점 꼬이게 한다.

처음에는 볼펜 하나만 찾으면 되던 것이 어느덧 CIA가 개입하고, 등장 인물의 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을 ‘한방’에 해결할 결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작가 LK(이선미 김기호)는 MBC ‘신입 사원’에서 드라마의 경쾌한 재미와 별개로 벌려 놓은 사건들을 수습하지 못하고 무리한 결말로 아쉬움을 줬다. 과연 이번에는 무사히 이 ‘서스펜스 멜로 추리 스파이 드라마’를 멋진 결말로 끝맺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까.

대중 문화 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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