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3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김모(39)씨는 최근들어 주말마다 고향인 대구로 향한다. 동창회나 각종 망년회 모임에 얼굴을 내밀기 위해서다. 내년부터 지방의회 의원들이 월급을 받을 수 있게 되자 김씨는 출마를 결심했다.
김씨는 “당선되는 게 관건이므로 기초 의원이든 광역 의원이든 가리지 않고 선거에 나갈 생각”이라며 “의원 대우가 좋아졌다는 게 결정적 동기”라고 말했다.
내년 5월31일 실시되는 지방의회 선거가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출마 예비 후보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방의원 유급화 실시로 정치권 인사는 물론이고 시민ㆍ사회단체 종사자 및 일반 직장인들까지 대거 출마 대열에 동참할 태세다.
때문에 광역 709명, 기초의원 2,888명을 뽑는 내년 선거의 경쟁률은 예년 평균 2.6대1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대략 15만여명이 나서 6대1 가량의 경쟁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정도면 ‘묻지마 출마’라고 할만하다.
출마 러시의 진원지는 역시 정치권이다. 당직자와 의원 보좌진에 이어 지역의 선거 책임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공천경쟁에서 의원들의 지원을 받기 쉬운 데다 지역 상황에도 밝기 때문이다. 실제 의원회관에 있던 보좌진 중 30여명이 출사표를 던지고 이미 지역에 내려갔고,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 출신인 열린우리당 모 의원의 비서관 A씨는 요즘 지역 사무소에서 민원 해결에 열심이다. 의원을 도우면서 자신의 이름도 자연스레 알릴 수 있어서다. A씨는 “정당 관계자들에 이어 대민업무가 많은 공무원들, 지역 금융기관 관계자들도 선거판을 기웃거리고 있다”며 “지역 유지들은 한나라당에, 시민단체 운동가들은 우리당이나 민노당으로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공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예비 후보자들은 희망하는 정당 행사에 무조건 참석해 눈도장을 찍는다. 각 정당에서 실시하는 정치아카데미 등에는 이들로 성황을 이룬다. 또 비례대표의 여성 몫을 겨냥, 여성정치학교 등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각 정당들은 기초 의회부터 경쟁력을 높인다는 방침이어서 공천과정에서 각종 전문가 등 ‘화이트 칼라’를 우대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나 지역유지 등이 점령해온 지방의회의 색깔이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의원의 경우 수도권에서는 정당 공천이 당락의 큰 변수이지만, 지방은 상황이 다르다.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이므로 영ㆍ호남 등 지역 색이 뚜렷한 곳에서는 특정 정당 공천자 외에 나머지 후보는 모두 같은 입장이다. 때문에 예비후보들은 정당 공천을 위해 중앙당 주변을 기웃거리면서도 공천 탈락에 대비한 바닥 훑기에도 여념이 없다. 이중 기존 4개 정당에 이어 국민중심당까지 뛰어든 충청권이 후보자간 눈치싸움이 가장 치열한 곳으로 분류된다.
농촌지역에서는 영농 후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의 대거 출마 움직임도 있다. 쌀 비준안 국회통과 이후 “우리 지역은 우리가 챙기자”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이들이 정당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지역과 연계해 지방선거를 위한 군소정당을 만들 것이란 소문도 나오고 있다.
지방선거가 조기 과열조짐을 보임에 따라 벌써부터 탈ㆍ불법 선거운동도 난무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금품ㆍ음식물 및 선심관광 제공 등으로 선관위에 단속된 건수는 기초의원 관련 751건, 광역의원 214건에 이르고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 달라지는 기초의원 선거
시ㆍ군ㆍ구 기초의원에 대해 정당공천을 하고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선거구별로 1명이 아닌 2~4명씩 뽑기로 한 것은 5ㆍ31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 변경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인지 각 정당도 공천심사위 구성 등 구체적 공천 준비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각 당 공히 포괄적 기준만 마련한 상태다. 열린우리당은 기초의원 공천을 시ㆍ도 당에 맡기되 경선과 전략공천을 7대3 비율로 한다는 원칙정도만 정했다. 당 관계자는 12일“누가 뭐라고 하든 당선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며 “기간당원만의 경선비중을 줄이고 전략공천 비중을 늘리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시ㆍ도당이 공천하되, 30%는 전략공천으로 하고 나머지 70%는 경선ㆍ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정한다는 계획만 세웠다. 공천기준도 아직 “당 공헌도, 지역밀착 정도, 다양한 분야의 후보를 추천한다”는 정도만 정해졌다. 반면 민주당은 일찌감치 중앙당 차원에서 주로 전략공천으로 후보를 낸다는 방침을 정했고 민노당은 모든 지역에서 당원 투표로 후보를 결정키로 했다.
하지만 이런 기준에도 불구하고 기초의원의 성격상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 “사실상 현역 의원이 공천하는 것”이라는 말도 과장은 아닌 셈이다. 출마 희망자들이 최근 ‘눈 도장’이라도 찍기 위해 지역구 의원들의 동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런 현실에서다.
여야가 중선거구 도입을 결정하긴 했지만 여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민노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당초 여야는 소지역주의 해소를 명분으로 동별로 1명씩 뽑던 기초의원을 선거구를 넓혀 2~4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로 바꿨다.
그러나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장악한 각 시ㆍ도 의회에서 선거구를 정하는 과정에서 4인 선거구는 크게 줄고 대부분 2~3인 선거구로 조정돼 민노당에 불리해졌다.
실제 행자부 안에 따르면 906개 기초의원 선거구 중에서 2인 선거구가 366개, 3인 선거구가 379개로 대부분이다. 4인 선거구는 161개다. 이 문제는 시ㆍ도 의회가 선거구 획정 심의를 끝내는 이 달 말까지 계속 논란이 될 것이다.
정녹용기자
■ 내년부터 지방의원 유급화…연봉은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지방의원 유급화가 단연 화두다. 6월 말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내년 1월부터 광역의원과 기초의원도 부시장ㆍ부지사나 부군수 등에 버금가는 ‘월급’을 받게 된 것이다. 정치예비군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출마 러시가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광역의원은 명예직이긴 하지만 이미 상당한 액수의 의정활동비와 회기수당을 받고 있다. 의정활동비는 월 150만원씩 연 1,800만원이다. 회기수당은 하루 11만원으로 연간 120일로 회기가 규정돼 있어 연 1,320만원이다. 합치면 3,120만원이다. 기초의원도 의정활동비로 월 110만원씩 연 1,320만원을, 회기수당으로 하루 10만원씩 80일 회기로 연 800만원을 받는다. 모두 2,120만원이다.
하지만 유급화로 새해부터 수령액이 배 이상 늘어난다. 의정활동비는 현행대로 받으면서 회기수당 대신 신설된 고액의 월정수당을 받기 때문이다. 월정수당액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행자부 관계자는 12일 “구체적 급여 규모는 각 지자체 의정비 심의위원회에서 정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않고 자율결정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정활동비와 월정수당을 합쳐 연봉이 광역의원은 6,000만~7,000만원선, 기초의원은 4,000만~5,000만원선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같은 고액 유급화의 파장은 예상보다 클 전망이다. 돈은 없지만 젊고 능력 있는 정치 지망생이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지만 유급화에 이은 후속조치로 지방의원들이 요구하는 ‘1의원 1보좌진’ 제도까지 도입된다면 지방의원의 지위역시 크게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유급화 이면엔 ‘혈세 유출’이라는 비판여론 속에 지자체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정적 측면도 숨어있다. 유급화에 따른 재정 부담을 중앙정부 지원 없이 고스란히 지자체가 지게 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설상가상이다. 실례로 연간 세수가 23억원에 불과한 경북 울릉군은 내년부터 군의원 7명에 대한 보수로 연간 세수의 약 6분의 1이 넘는 4억원 이상을 지급해야만 한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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