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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박물관 마을 50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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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부 칼럼] 박물관 마을 50개를 위하여

입력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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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읍이 들어서기엔 기가 모자랐는지, ‘행복도시’로 만족해야 하는 땅이다. 3일 찾아간 충남 연기군ㆍ공주시의 '행복(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다. 대지 위로 겨울햇볕은 따사로웠으나, 그 위에서 흙을 일구고 조상 묘를 모셔온 주민의 얼굴은 스산해 보였다.

길게는 700년 동안 집성촌을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온 부안 임씨, 여양 진씨, 순흥 안씨 등이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고향에서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지난 추석에는 대처에 나간 아들딸, 손자손녀까지 모여 정든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행복도시' 예정지의 문화 보존작업

마을 입구에서 휘날리는 현수막들도 착잡해 보인다. ‘칠백년의 조상 땅을 어느 누가 강탈하랴’는 부안 임씨 대종회의 외침이 나부끼고, 바로 아래로는 ‘수용지 주민을 위한 보상전문 변호사 초청설명회’도 친절하게 펄럭인다. 떠나갈 사람들의 이삿짐이라도 덜어주려는 양 써 붙인 광고문도 얄궂다. ‘항아리ㆍ맷돌ㆍ병풍ㆍ가구ㆍ그림 등 오래 된 물건 삽니다’

이곳에서 어느 집 식구가 몇이며 숟가락은 몇 개인지, 밥상 제사상에는 어떤 음식이 오르는지, 김장은 얼마나 하는지, 상여는 누가 메는지 등을 꼼꼼하게 살피고 기록하는 16명의 젊은이가 있다.

지난 9월부터 내년 11월까지 마을 지표조사를 하는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남녀 석ㆍ박사들이다. 일본인도 한 명 끼어 있다. 하찮은 것들이지만 훗날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며, 이를 내다보고 작은 것들을 기록하는 젊은 박물학도의 정성은 또 얼마나 갸륵한가.

이 국립민속박물관 행복도시 조사단원들은 마을 사람과 24시간 함께 생활한다. 행복도시 예정지역에서 앞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문화유산을 기록하고 보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최근까지 흙벽에 붙어 있다가 이들이 수집한 벽보 중에는 1970년대 연기군 보건소의 가족계획상담ㆍ안내 포스터도 있다. 출산율 저하가 국가발전의 걸림돌처럼 야단을 치는 지금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이 빛 바랜 포스터는 좌충우돌하며 흘러온 세월을 거짓 없이 증언해 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또 그 중 한 마을은 현재 그대로 통째로 보존하여 민속마을이자 생태박물관, 역사체험장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주민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과, 민속마을을 조성한 뒤 지속가능토록 관리하는 일이 남은 과제다.

이 ‘통째로 민속마을’이 하회마을 낙안읍성 등 기존의 민속마을과 다른 점은, 지금 사는 모습에 부지깽이 하나라도 보태거나 빼지 않고, 2005년 삶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없다면 삶의 흔적은 시간을 따라 가뭇없이,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다.

답사 일행 속에서 정미숙 가구박물관 관장이 대담한 제안을 했다. 개발의 불도저가 국토를 완전히 휩쓸기 전에, 후손이나 외국인에게 우리 시대 생활상과 전통문화를 보여줄 민속마을이 전국에 50개는 보존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집들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템플스테이가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체험이지만, 절 체험과 절 음식도 하루면 끝나고 다음날은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지금 국가가 관광산업을 위해서라도 50개 정도의 마을은 보존해야 합니다.”

●관광은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산업

제러미 리프킨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제법 사는 나라 사람들은 이제 더 소유하고 싶은 물건이 없다. 자동차와 냉장고, 세탁기, TV, 오디오 등을 대부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낯선 문화에 대한 체험, 즉 관광산업이다. 세계관광기구는 2020년의 세계 인구는 78억으로 예상되는데, 그 중 16억 명이 해외여행 길에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관광은 가장 오래 된 문화산업이며, 과거와 미래가 자연스레 만나는 곳이 민속마을이 될 것이다. 작은 박물관 마을에서 넓은 미래가 보인다.

박래부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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