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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3) 시인들의 은밀한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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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의 나쁜 취향-문화, 낯설게 보기] (43) 시인들의 은밀한 사생활

입력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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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어느 매체에 ‘시인공화국의 젊은 바퀴벌레들’이라는 제목으로 최근 젊은 시인들에 관한 생각을 짤막하게 밝힌 적이 있다.

‘시인공화국’이란 말이 매주 수요일 본 지면에 연재되는 소설가 고종석의 연재 타이틀을 빌린 것이라는 건 새삼 밝힐 필요도 없을 테지만, ‘바퀴벌레’라는 표현엔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을 듯싶다. 그다지 좋은 뉘앙스가 아닐지 몰라도 내 본의는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바퀴벌레’를 상찬의 용어로 쓰는 것도 썩 어울려 보이진 않지만, 해명컨대 내가 쓴 ‘바퀴벌레’엔 최근 젊은 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개인성과 예측불허의 감각적 주파능력 및 그들을 바라보는 문단 안팎의 전반적인 시선 등이 포괄적으로 겹쳐 있다.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 시인들은 광장을 바라지 않는다. 또는, 그들의 광장은 은폐된 개인성의 성채 안에서 수시로 갈라지고 뭉치는 유동성을 지닌다. 그들은 애당초 공공의 광장이란 걸 믿지 않는다.

설사 그런 게 존재하더라도 자신만의 예민한 촉수를 분방하게 펼치는 그들의 레이더망에선 이지러지고 균열된 채 골격만 앙상하게 남은 구시대의 유물처럼만 보일 뿐이다. 이 시대의 바퀴벌레들은 그 허물어진 공공의 공간을 제 멋대로 부유하며 자신들만의 진지하고도 즐거운 놀이에 전념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공간에 예기치 못한 용도변경이 심심찮게 이루어진다.

그 곤혹스럽고도 즐거운 혼란에 특별한 주동자나 선창자는 없다. 특정한 무엇을 파괴함으로써 변혁을 꾀하는 집단적 모토 또한 없다. 바퀴벌레들이 환경의 점증적인 부식과 시간 적체에 의해 자연발생하듯, 기존의 언어 및 세계관을 다양한 형태로 전복하는 젊은 시인들의 급작스런 득세는 그러므로 심상찮은 문학적 필연성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진지하고도 즐거운 놀이라고 했거니와, 약간의 무리수를 감안한 채 그들의 시를 역설적으로 짚자면 ‘참혹한 유희와 즐거운 고뇌로서의 언어적 모험’이라 요약할 수 있다. 지난 여름 출간된 이민하의 시집 ‘환상수족’(열림원)에선 그 모험이 의식적 자기분열과 환상의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을 찍었다 필름을 화분에 심었다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화분을 내놓았다 화분 속에서 주렁주렁 사진들이 익어갔다 너무 익은 사진은 바닥에 떨어져 짓물렀다 방안 가득 단물이 고였다 물컹물컹 사진들이 내 발목을 핥았다 한 달 전에도 사진을 찍었다 어제도 찍었다 난간에 매달려 찍었다 화분에서 흘러넘친 필름은 창을 향해 넝쿨처럼 뻗었다”

- 이민하, ‘사진놀이’ 중에서

‘환상수족’(수족이 절단된 후에도 없어진 부위가 아직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이란 시집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민하의 시는 자기 자신의 의식과 기억을 고의로 조각내고 사물화함으로써 스스로를 놀이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일견 개인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버겁고도 허망한 안간힘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진짜 목적은 고통의 과시나 극복에 있는 게 아니다. 시인에게 고통은 흡사 요리에 들어가는 원재료와도 같다.

그건 고통의 밀도를 스스로 증폭시키면서 고통을 잠정적인 열락의 소스로 바꾸는 내적 에너지의 힘찬 파동을 이끌어낸다. 그 파동은 자칫 슬픔이나 절망 등의 일차적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지도 모르는 스스로에 대한 엄밀한 통제기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건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나 극복의 차원을 넘어 도저한 부정성을 긍정하고 체화하려는 의식적 자기노력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의식적 자기노력이 무의식의 전면적 의식화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이민하 뿐 아니라, 올 한해 불현듯 방생된 물고기떼처럼 득시글거린 바퀴벌레들의 공통된 특징을 찾자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지우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반 위대하시고 저명하신 프로이트 박사님께서 ‘빙산의 일각’이라 아슬아슬하게 표현하신 그 지점이 바퀴벌레들에겐 별다른 강박으로 다가오지 않는 듯하다.

통상적으로 무의식은 존재의 내부에 잠재된 외부적 존재라 여겨지지만, 인간의 이성과 감성의 영역을 본원적으로 분리할 수 없듯 무의식을 의식의 대자(對自)적 영역으로 파악하는 건 보다 총체적이고 근원적인 인간 이해를 방해하는 선험적인 금 긋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바퀴벌레들은 기존의 인문학이 도구함 정리하듯 배치시켜놓은 인간 개념으로부터 일탈하여 자유롭게 날뛰거나 오로지 그 자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쓸 수 없는 자기만의 사적 신화에 골몰한다.

소위 영상세대니 인터넷 세대니 하는 말들은 그들을 수식하는 가장 손쉽고도 책임 없는 분류법에 불과하지만, 바퀴벌레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하고 명명할 줄 안다는 데 있다.

가령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김민정, 열림원) ‘뱀소년의 외출’(김근, 문학동네) ‘여장남자 시코쿠’(황병승, 랜덤하우스 중앙) ‘피터래빗 저격사건’(유형진, 랜덤하우스 중앙) 등 인용과 창조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그들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자아의 대체물들은 넘쳐나는 기존의 텍스트들을 자기 식대로 원용하고 변용하고 비틀어 자아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때문에 그들이 각종 텍스트를 전유하는 방식은 문학이나 인문학의 영역을 넘어 영화와 록음악 등 소위 감각적 체험의 극한을 제공하는 대중매체와의 친연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그들의 전반적인 특징인 양 일반화하는 건 그들의 시와 대중문화의 특성을 동시에 오독하는 결과를 낳는다.

90년대 초ㆍ중반 장정일이나 하재봉 등이 일종의 간텍스트적 효과로써 영화와 록음악을 인용했던 것과는 달리 바퀴벌레들이 대중문화를 대하는 방식은 훨씬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만큼 그들의 생각과 생활 근저에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다.

그러면서 개인적인 취향과 성향에 따라 각기 상이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독특한 색감과 리듬이 약간은 무질서하게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그 무질서가 오히려 본령에 더 가까운 시의 존재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시에 대한 유구한 상식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겐 여전히 곤혹스럽고 위험천만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시를 특정한 언어적 형식과 문학적 불문율 아래 가둔 채 공허한 자기위안만을 반복하는 거짓된 물아일체(物我一體)에의 환상이 내겐 더 곤혹스럽고 위험천만한 시적 무사안일주의라 여겨진다.

내가 아는 한, 대상은 결코 주체에 편입되지 않고 주체 또한 그 자체로 완벽한 통일체로서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건 그 통합되지 않는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종의 에너지덩어리로써의 불가능성뿐이다.

시적 자아란 그 불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지시하는 순간적이고도 영원한 가면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시는 늘 삶의 저편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기 자신의 불분명한 미래이자 수시로 시간 경계를 초과하며 재생성되는 과거일 뿐이다.

그런즉슨, 시인에게서 ‘당신을 사랑한다’는 둥의 확언을 기대하지 말라. 시인이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당신을 사랑하지만, 사랑을 발설함으로써 사랑이 남의 일이 되어버리게 만드는 그 오묘하고도 난감한 소통불능성과 불가피한 아름다움에 대한 끊임없는 좌절뿐이다. 그럼으로써 시의 발생론적인 역설이 한시적으로 완성된다.

지구가 망해도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바퀴벌레들처럼 시인이 추구하는 불가능성의 추구는 그 불가능성 덕분에 영원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유효성은 모든 공식적인 말들을 궁극의 무효로 환원하는 언어의 이중성과 파탄성을 통찰할 때에야 비로소 유효해진다.

이상, 갑자기인 듯 필연적으로 출현한 바퀴벌레들과 동류이고자 하는 한 쇠잔한 바퀴벌레의, 공인되지는 않았으나 임의적이나마 꼭 나서서 주절거리고 싶었던, 대표발언이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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