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면 막말하고, 착하면 무시하지. 착하면 손해보고, 착한들 누가 알까. 착하면 망한다네.”
모든 배우가 민요라도 부르듯 목청껏 외쳐 대는 사설이 언뜻 흥겹지만, 곰곰 생각하면 서늘하다. 그러나 지금 고도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저 사설에 토를 달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극단 여행자의 ‘서울 착한 여자’는 21세기 한국에 관한 거친 보고서이다. 여기서 거칠다 함은 상징과 은유의 공격성에 대해 일컫는 말일 뿐, 내용이나 구조에 대한 언급은 아니다. 브레히트의 대표작 ‘사천의 착한 사람’이 패러디 수법을 거쳐 완전한 우리의 연극으로 거듭났다. 절도 강간 폭력 살인 등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어두운 양상들이 무대에서 숨김없이 표현된다.
배우들의 합창 등 연기 앙상블 속에서 자신의 비극적 삶을 구현해낼 타이틀 롤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 세파에 찢긴 여성 셴테, 강퍅한 현실에 못 이겨 그녀가 변신한 폭력적 인물 슈이테 등 상반되는 두 성격을 한 몸에 구현할 순이 역을 김은희가 맡았다.
생존을 위해 청년들과 거침없이 막말을 주고 받으며 농탕질치던 그녀가 수렁 같은 현실을 자각하고 그 의미를 깨닫는 장면은 처절하다. 사람들이 침을 뱉으며 옆을 지나칠 때, 쓰러진 그녀의 다리 사이로 흐르는 핏물 등 곳곳에 삽입되는 충격적인 장면들은 욕망의 도시 서울에 내리는 사형선고로 읽힌다.
무대가 표현하는 현실은 참혹해도 4ㆍ4조, 3ㆍ4조를 근간으로 한 우리 어투는 입에 착착 달라 붙는다. “천생연분 연지곤지 떡두꺼비 오래오래 청사초롱 알콩달콩 검은 머리 파 뿌리(후략).” 순이의 혼례날, 사람들이 건네던 덕담이다. 극의 도입부, 순이에게 선사하는 노랫가락은 전통 사설 형식을 다르고 있다.
“자미대제(紫薇大帝) 북두님, 길흉화복 주시고! 천기관장(天氣管掌) 남두님, 풍년 들게 하시고! 생사관장(生死管掌) 삼태성, 불로장생(不老長生) 주시고!” 흥겨운 연주까지 동참, 우리 것으로 거듭난 브레히트의 재탄생을 널리 알린다.
브레히트라면 일단 반자본주의적 좌파 작가로 치부돼, 1988년 전까지만 해도 공식적 공연과 논의가 일체 금지됐지만 젊은 연극인들에게 그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었다. 간단 없이 모색돼 온 그의 한국화 작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똑똑히 확인할 자리이기도 하다.
2003년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연극 부문을 수상하는 등 최근 주목 받고 있는 양정웅씨가 연출한다. 전중용 정해균 김준완 등 출연. 18일까지 서강대 메리홀 화~금 오후 7시30분, 토 6시, 일 3시. (02)3673-1390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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