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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걸어다니는 팝아트' 낸시 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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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걸어다니는 팝아트' 낸시 랭

입력
2005.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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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걸어 다니는 팝아트’라는 별명을 좋아한다.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패션브랜드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는가 하면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도 참가한다.

장르를 구분하지 않는 잡식성과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본다”는 대담성은 작품에 그대로 구현된다.

앵그르의 명화 ‘터키탕’을 패러디한 ‘찜질방’을 보자. 질펀하게 널부러져 있는 인물사이에서 브래지어와 가운 차림의 농염한 포즈로 ‘나 어때?’하듯 활짝 웃고있는 자신을 드러낸다.

‘셀러브레이션 피라미드’에서는 호들갑스러운 쇼핑호스트로 분장해 황금색 피라미드를 소개한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예수의 자리에 자신을 밀어넣고 좌우에 오사마 빈 라덴이나 부시, 고이즈미 등 논쟁적인 인물들을 포진시킨다.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차용해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벽을 허물었던 팝아트는 그에게서 비틀기를 통한 쾌락과 유머, 자기현시에 대한 과도한 욕구로 표현된다.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비판에 “예술은 더, 깃털처럼 가벼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 인물. 2000년대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꼽히는 낸시 (글로리아) 랭(27ㆍ한국명 박혜령)이다.

쌈지갤러리가 14일부터 여는 개관 1주년 기념전 ‘아티스트 낸시 랭의 비키니입은 현대미술’ 출판기념전시회에 앞서 그를 만났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초미니 스커트와 피어싱한 배꼽을 본 순간,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 산 마르코 성당앞에서 란제리 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켰던 당돌함이 떠올랐다.

당시 퍼포먼스는 낸시 랭이라는 이름을 미술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낸시 랭의 관심은 ‘대중과의 소통’ 여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트의 역할은 판타지와 시간여행을 통해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랭은 “미술계에서만 얘기되는 미술은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단정 짓는다.

“예술의 상업성을 인정하면서도 갤러리를 고상한 명예의 전당 처럼 만드는 엄숙주의는 구시대적”이라는 논평도 이어진다.

“감동이란 결국 대중을 홀릴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다분히 논란이 될만한 주장은 미술의 터부(금기)를 깨는 것으로 구체성을 갖는다.

프랑스 고급브랜드 루이비통과의 협업에서 낸시 랭은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입으로는 “나는 명품이 너무 좋다”며 입에서 마치 향기를 뿜어내듯 모노그램 마크를 뿜어낸다.

대표작인 ‘터부 요기니’ 시리즈는 사탄과 천사 중간존재로 상정된 터부 요기니가 로보트 몸체에 비너스나 천진난만한 아기, 혹은 자기 자신의 얼굴을 단 채 쇼핑하고 춤추고 여행하며 대중의 잃어버린 꿈을 대신 이루어준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미국문화와 일본문화, 명품에 대한 맹목적 추종 등 우리 사회의 현상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그의 단기적 성취는 분명하다”면서도 “현상적 측면을 뒷받침하는 깊이를 갖추었느냐는 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낸시 랭이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성찰을 담보한 아티스트인지, 포스트모던사회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 엔터테이너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관객의 몫일 터. 전시는 26일까지 계속된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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