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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까지 퍼진 불신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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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까지 퍼진 불신풍조

입력
2005.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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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학부모가 고교 시험을 감독하는 사진을 보았다. 해외 토픽감이 될만한 사진을 보면서 차라리 집에서 자식 공부시키는 편이 낫겠다고 혼자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 자식의 친구가 커닝하여 내 자식의 성적에 손해가 가지 않나 부모가 나서서 감시해야 하는 곳이 학교라니 서글픈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가 학부모들에게 시험 감독을 맡기는 방안을 ‘내신 신뢰도 제고 방안’에 포함했다는 데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학부모가 동참하여 교육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학부모, 교사, 학생이 함께 하는 학교 공동체를 활성화한다고 했지만, 주목적은 시험 부정을 막고 잡음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내신의 신뢰도를 올리기 위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포기하는 발상에 많은 학부모와 교육 정책 입안자도 동의한 것 같다.

수능시험에 금속탐지기가 동원되고, 교단 앞에 제출한 가방 속에 들어있던 휴대전화로 인해 2년간 시험 기회가 박탈되고, 시험 중 화장실에 가는 학생을 검색한 뒤 교사가 화장실까지 동행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싶다.

시험 부정을 없애는 일에만 급급했지 이것이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서로 믿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학부모에게 시험 감독케

남의 이익이 나의 손해로 인식되는 사회에서는 신뢰가 자랄 수 없다. 내가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부정한 수단이나 위법을 정당화하고, 자연스레 남을 깎아내린다.

신뢰가 깨어진 후 발생하는 불필요한 비용이 모두의 몫으로 돌아오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내가 뽑은 정치인을 믿지 못하며, 남의 노력을 폄하하고, 남의 부(富)를 조롱하며, 심지어 먹을거리조차 의심한다. 그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없으면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해도 선진국 진입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서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비행기의 연ㆍ발착을 다반사로 본다. 관공서나 은행에 가면 기다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하지만 항공편의 연ㆍ발착이나 창구 직원의 늦장 일 처리에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기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별 불평이 없다. 내가 받는 조그만 손해가 결국은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생각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PD수첩’ 사건도 동일 선상에 있다. 프로 제작진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의혹을 가질 수는 있지만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그 의심을 과학자들의 손에 넘겼어야 했다.

남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나서야 하고, 나의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지금도 제작진의 마음속에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를 과학계가 제대로 검증하리라는 신뢰가 없는 듯하다.

얼마 전 싱가포르 정부는 마약을 밀수한 호주인을 처형했다. 그런 법의 존재 가치 여부는 별개의 문제로 접어두자. 하지만 국법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양국 간의 관계 악화를 감안하면서 싱가포르 정부는 극형을 집행했다. 그것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뢰 없이는 선진국 요원

신뢰감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는 여건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시험 부정 방지를 위해 학부모 시험 감독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교육당국에 좀더 진지한 고민을 당부한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 과거의 병력(病歷)을 아무리 말해 봐야 지금 내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신뢰는 신뢰를 낳는다. 그리고 신뢰는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든다. 그것이 선진국이다.

김민숙 미국 로드아일랜드주립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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