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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임동확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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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임동확 시집 '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입력
2005.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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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확 시인의 새 시집에서, 3부에 수록된 시 ‘고별사’를 우선 읽자.

▲ 고별사

잘 가라 내 청춘

미친 개들의 입에서 입으로 뺏고

빼앗기며 핥고 깨물어도 아직 삼켜지지 못한

뼈다귀 같은 슬픔뿐이어도

제대로 된 긴 전망 하나 없이도

끄떡없이 저 피의 세기를 건너왔느니

끝내 신원 될 기약조차 없이

생매장된 검은 기억의 꽃밭 위를 맴돌다가

금세 날아가버린 나비처럼

나의 눈길은 저 언덕 너머 양떼구름을 쫓고 있느니

검고 윤기 나던 긴 머리칼 한번

뽐내지 못한 채 죄 없이 쥐어뜯다가

어느새 새하얗게 세어버린 청춘의 날들이여

잘 가라

그 어느 연대, 땅에선들

청춘의 날들은 억지로라도

괴롭고 힘들어 하지 않았으랴

잘 가라 내 청춘

다가오는 날들이 결례 같은 죽음뿐일지라도

무작정 떠밀려온 채 살아 애쓰는 여기가 나의 거점

그때 그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이 없다면

이토록 깊고 서늘한 사랑의 완성을 꿈꿀 수 없으리

1980년의 봄을 고향 광주에서 21살의 더운 피로 감당한 시인이, 이제 돋보기를 써야 하는 나이가 됐다. “비록 젊은 날처럼 사물을 함부로 보지 못한다 해도/ 이젠 열정 때문에 무례를 범하지 말아야 할 나이”(‘노안’)라는 것이다. 꼭 나이 때문이랴마는, 어쨌든 이제 그가 “여기”를 “나의 거점”이라고 한다.

“그때 그 패배와 나락의 순간들”을 긍정하며 “깊고 서늘한 사랑의 완성을 꿈”꾼다고 한다. 87년 시집 ‘매장시편’(민음사)으로 등단한 이래 18년, 5권의 시집을 내는 동안 고집스레 져 온 시간의 무게, 그 좌절과 비애와 환멸과 자조의 굴레, 기억의 억압들을 이제 풀어놓고자 하는 것이다.

그 지난한 탈피의 몸부림과 마침내 도달한 거점의 대강이 이번 6번째 시집의 어렴풋한 풍경이라 하자.

‘고별사’가 실린 시집 3부의 소제목이 ‘추억은 힘이 세다’다. 그리고 2부(‘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며’)는 그 힘 센 추억 세계의 일부를 엿보게 하는 공간이다. 가령,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은 투자 없는 끝없는 소비”이고, “즐겁거나 슬프거나 쉬 지워지지 않은 기억들만/ 떨어져나간 단추 자리처럼 뚜렷하다/ 문득 사랑하는 일마저 어느새 닳고/ 더러워진 옷소매처럼 감춰야 할 부끄럼”(‘걸레질을 하다가’)이며, “이미 저질러진 과거사들이 손전등 불빛을 둘러싼/ 어둠처럼 달라붙어 익숙한 길조차 더듬거리던 밤”이고, “결코 다가오는 날에도 오래 자유롭지 못할/ 치욕의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던 나날들이었다는 것이다.

시인은 그 나날들의 “허공처럼 커진 슬픔 덩어리 하나를/ 창녀처럼 껴안고 삼보일배하며”, 사막을 건너듯, 견뎌온 것이다. “어느새 비애와 환멸의 수염만 쭈볏 웃자란/ 중년의 사내”로 “희망도 없는 세기의 밤길을 술 취한 채 걷고 있”(‘눈’)지만, 이제 그 “공허의 사막속에서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는 사랑의 구층탑”을 복원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징후는 지난 생을 일러 ‘끝없는 소비’라 했을 때 감지됐겠지만, 1부의 시들은 그 의지를 보다 선명히 드러낸다. “오, 너무나도 무겁거나 혹은 가벼워서 서러운 생이여!/ 가슴마다 제 것이 아니었으면 좋을 법한/ 홀로 살찐 추억의 부스러기만 혹처럼 등에 단 채/ 저 성난 세월의 혓바닥에 가득 술을 부어/ 일찍이 꿈꾸어보지 못한 자비와 휴식을 노래해야 하리//…마침내 이젠 미치도록 행복하고 싶어, 소리치며/ 모두들 그렇게나마 제 운명을 한 번쯤 옹호해야 하리”(‘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그러니 어느새 제법 아름다워졌을 법도 한 어제와/ 늘 용서받기에 급급할 내일에도 난 그 누구든 미워할 수 없다/…슬퍼하거나 오래 아파할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다”(‘한 시절의 파도가 고요하매’)

태도와 관(觀)의 변화가 세계에 대한 인식의 굴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세상은 여전히 “덫이자 먹이의 허공”이며 “탱크의 무게로 깔아뭉개며 밀려오는 죽음”의 공간이다.

그 앞에 생은 종이컵 두른 촛불처럼 “목숨의 열망을 연소하며”(‘종이컵과 촛불’) 서 있다. 다만, 내려앉은 가지의 흔들림을 따라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날개를 퍼덕이”는 새처럼, “아무도 쉬 장담하지 못하는 평화가, 안식이 그렇게라도 다가온다면// 흔들리면서 끝내 흔들리지 않은 사랑이 그렇게라도 꽃필 수 있다면”(‘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날갯짓을’) 여린 근육이 엉키고 눈에 실핏줄이 터져도 퍼덕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열망은 머리가 아니라 시간의 짐이 남긴 어깨의 굳은 살에서 비롯된 것이겠기에 든든하다. 그가 제 몸 그토록 짓찧으면서도 완벽히 까라지지 않은 것은 “끝없이 배반을 꿈꾸되 결코 배반하지 못하는 기차바퀴 혹은 그 기차바퀴가 내는 거친 마찰음과도 같은” ‘희망의 존재 방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달빛이 천강(千江)을 비추듯, 바다로 내려 섞이는 빗방울들이 각각 하나의 중심이고 전체의 중심이듯, ‘운명과 형식’은 숱한 이탈과 변칙에도 서로를 배제하지 않음을 보았기 때문이다(5부의 시들).

그러니 그의 시는, 변하지 않았다고 하자. “손 쉬운 귀향보다 화려한 절망의 가출을 독려”(‘겨울비’)하든, “온 힘을 다해 축복받은 귀향길에 들고 있다”(‘바다에 내리는 비’)고 하든 그의 시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자. “시는 외침이 아니라, 외침이 터져나오는 자리”(김현의 평문, 그의 시 ‘불꽃의 심연’ 재인용)라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시집의 제목처럼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고,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오직 너는 나의 너였”던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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