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7일 미 중앙정보국(CIA)의 해외 비밀수용소 운영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유엔 개혁을 둘러싸고 깊어진 양측간 갈등이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유엔의 이례적 미국 비난으로 급기야 미국과 유엔의 전통적 협력 관계마저 흔들리는 지경에 이른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루이스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이날 유엔본부에서 기자들에게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이 고문에 대한 국제협약을 훼손,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의 도덕적 권위를 해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아버 판무관은 “CIA 해외 수용소에 대한 조사를 원한다”며 “신체의 고결함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 권리가 ‘테러와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버 판무관은 특히 “비밀 억류 센터에 용의자를 수감한 것도 일종의 고문”이라며 “고문에 관한 국제협약은 용의자들의 죄목이 무엇이든 고문 등 불법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을 옮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대법원 판사 출신으로 과거 미국의 기본권 확대 노력을 칭찬했던 아버 판무관은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 안보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세계를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않게 만들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에 대해 존 볼튼 유엔주재 미 대사는 기자들과 만나 “아버 판무관의 발언은 극단적 폭력주의자들과의 투쟁에 도움이 안된다”며 즉각 반박했다.
볼튼 대사는 “국제적 공민권 보호자가 신문에서 읽은 것 이상의 증거도 없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적법하지도 않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고문을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CIA가 테러 용의자들을 심문하기 위해 구 동구권에서 비밀수용소를 운영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인권이사회 신설 등 유엔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유엔의 정규 예산안 처리에 협조할 수 없다며 3개월의 잠정 예산안 편성을 주장하는 등 일방적인 개혁 공세를 펴고 있다.
유엔은 내년 1분기에만 4억5,000만~5억 달러의 예산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입금이 예정된 분담금은 1억7,000만~1억8,000만 달러에 불과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재정난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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