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음 만난 젊은 기자와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고향을 물었더니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자랐다”며 고향 자랑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예의를 갖추어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솜씨를 보고 “원산지가 좋으니 사람도 다르구나…” 라는 우스꽝스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 식품 원산지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마 식품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과 남편, 자녀의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이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기생충 파동 등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김치나 육류는 할인점 등 소매단계까지 원산지 표시가 의무화되어 있어 소비자는 유해성 여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어느 나라에서 생산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직장 단위의 외식이 보편화했는데도 음식점에서 먹는 쇠고기나 김치는 국산인지 외국산인지 알 수가 없다.
“외국산이면 모두 유해하다”는 그릇된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 사람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식품의 원산지 정도는 음식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음식점에서의 원산지 표시는 소비자에게 알 권리를 찾아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고향에서 땀 흘려 농사짓는 우리 농민들을 보호해 준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국적 불명의 쇠고기와 김치가 국산으로 둔갑, 식탁을 활보하는 현실에 밤잠 설쳐가며 자식 키우듯 먹거리를 키워낸 농민들의 좌절감은 아주 크다.
2007년부터 쇠고기에 대해서는 음식점에서 원산지 표시를 의무적으로 하도록 법이 개정된 것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생산자에게는 생산물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음식점에서는 고객만족이라는 서비스업의 기본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한다면, 개정 법률이 시행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지금이라도 전국의 모든 음식점이 자발적으로 육류와 김치, 쌀의 원산지 표시에 앞장서 준다면 무너진 소비자 신뢰도 회복하고 곤경에 처한 농민들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번 겨울은 추위가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듯하다. 지금 농촌은 잠시 숨을 고르는 시기이지만, 농촌의 현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농민의 주름살을 펴주는 것은 음식점 원산지 표시라는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
송석우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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