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겨울이 폴 오스터의 이 소설로 하여 조금은 덜 추웠으면 좋겠다. 그의 소설이 품은 온기, 인간에 대한 근원적 애정이 이번처럼 직정(直情)의 언어로 표출된 예가 없었다.
그는 이 소설을 “나는 조용히 죽을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는 사뭇 음산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59살의 은퇴한 생명보험 영업사원인 ‘나’는 폐암에 걸렸고, 이혼을 했고, 출가한 외동딸과의 관계마저 불편하다.
‘나’가 선택한 곳은 세 살 때 떠난 고향, 브루클린. 모든 의욕과 희망을 소진해버린 자의 이 쓸쓸한 귀향은, 하지만 예기치 않은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변화의 전기(轉機)가 된다. 기억 속의 조카들, 브루클린의 그늘진 사람들…, 그들과의 부대낌을 통해 ‘나’의 생의 에너지가 충전돼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줄거리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을 이렇게, 서사의 기승전결로 거칠게 요약하는 일은 무책임한 짓이다.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균열하는 강화유리의 열선(裂線)처럼, 불규칙하면서도 더없이 정교한 서사의 갈라짐. 그 열선들이 엉키고 풀리고 모여 타래를 이루는 단락들. 그 단락들을 촘촘히 채우며 이어가는 지적인 표현과 묘사들. 무엇보다 개개의 인물들이 지닌 독특한 분위기…. 그 모든 오스터의 매력을 전하는 일은 난감한 일이다.
인물들이 겪는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숱한 반전과 그 우발성과 즉흥성으로 현현하는 운명의 아이러니, 그 연쇄 사건들이 선사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은 실로 풍부하고 깊다고만 말하자.
또 하나, 소설의 한 대목에서 작중 화자가 말하듯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12쪽). 그것은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오스터는 이 말을 충실히 따르듯, 소설 끄트머리의 ‘당연한’ 결말을 슬쩍 비틀어놓는다. 그 뒤틀림이 곧 삶의 아이러니라는 듯.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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