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면 2005년도 정기국회가 끝난다. 이번 정기국회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어떤 평가가 나올까. 정기국회가 끝나지만 국회는 문을 닫지 못하는 데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임시국회를 여는 것은 예산안 처리를 못 했기 때문이다. 정기국회 직후 예산안 처리를 명목으로 임시국회를 여는 그릇된 관행이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에 상임위를 열어 결산심의를 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아도 좋을 생산적인 변화였다. 그래서 혹시나 기대를 걸었지만 역시나 법정처리 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최근 10년 동안 국회가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지킨 것은 단 두 번뿐이다. 바로 1997년과 2002년이다. 이 두 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한 달을 앞당겨 국회 문을 닫기로 여야가 합의했기 때문에 예산안이 법정기일에 처리될 수 있었다.
●예산안 처리 시한 또 넘겨
정기국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국정감사와 다음해 1년 동안의 나라 살림살이 규모를 정하는 예ㆍ결산 심사를 들 수 있다. 그래서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예산안 처리는 역시 올해도 법정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헌법 제54조는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가 새해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지키지 않는 것은 헌법 위반인 셈이다. 그러나 각 정당들은 국민에게 사과하기는커녕 미안한 마음조차 갖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예산안 처리시한이 훈시 조항이므로 문제없다고 만 할 뿐이다.
왜 예산안 처리가 지지부진할까. 열린우리당은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한나라당은 8조 9,000억 원을 깎으려 맞서면서 여야가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한나라당이 예산 삭감과 종합부동산세 관련법 처리를 연계시키는 바람에 기한을 넘기게 되었다. 열린우리당도 법정 기일을 꼭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버리지 못한 국회의 나쁜 버릇 하나는 의정활동은 제쳐놓고 선거에 목숨 거는 관행이다. 예전처럼 국회는 개점휴업이고 모든 국회의원들은 선거운동원이 되어 선거판을 누비고 다니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10ㆍ26 재선거 과정에서 국회 활동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다.
재선거는 지난해 4.15 총선에서 각 정당과 당선자들이 저지른 불법 때문에 세금을 들여 다시 치른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들은 부정선거에 대해 국민에게 사죄하고, 좋은 후보를 공천해 조용히 선거를 치렀어야 한다. 국회 활동을 부실하게 하면서까지 선거에 매달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강정구 교수 발언파문을 수사하는 검찰에게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수사지휘를 했고, 이에 반발한 검찰총장이 사표를 제출하자 한나라당은 국가 정체성 위기라 단정 짓고 구국 운동을 벌이겠다며 정치공세를 벌였고,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은 철 지난 색깔론이라며 반박했다. 선거가 끝나자 한나라당은 구국 운동을 중단했다. 결국 선거운동에 국회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이런 것도 다음 국회부터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나쁜 관행 내년에는 보지 않게
또 하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회윤리특별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했다. 국정감사 기간에 일어난 술자리 추태 파문에 대해 국회는 아무런 내부적 처리절차 없이 슬그머니 넘어가 버렸다. 자정 의지도 없었고, 어차피 국회윤리특위는 지난 반년 동안 공전 상태였다. 이제라도 국회는 윤리특위를 재구성하고 가동시켜야 한다.
이 추위에 지금 국회 앞에는 국회에 항의하고 건의하는 각종 시위, 집회, 철야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여의도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지 않도록 국회가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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