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이 최근 대통령 5년 단임제 개헌을 역설했다는 외신 보도가 눈길을 끈다. 그는 “현행 4년 중임제 하에서는 대통령이 재선에 대한 부담 때문에 국정을 과감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고 지적했다.
5년 단임제가 되면 재선을 위해 타협할 필요 없이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일찍부터 선거 분위기에 휘말린 룰라 대통령의 토로이고 보면 그냥 흘려 들을 게 아니다.
▦ 오랜 기간 군사독재에 시달렸던 남미 국가들은 민간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 단임제를 채택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중임제로 전환했다. 브라질이 대표적인 예다.
1995년 첫 민간정부인 카르도주 정부 출범 당시 4년 단임제를 채택했지만 2년 후 4년 중임제로 바꿨다. 남미 대통령제의 한 단계 발전이라고 할 만한 변화였다. 그러나 남미 국가들의 대통령 중임제는 효율성과 안정성을 갖춘 정치체제로 정착되지 못했다. 남미 국가들의 고질적인 정정불안은 여전하다. 룰라 대통령의 단임제 역설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 최근 우리 학계와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활발해지면서 5년 단임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논자들은 5년 단임제가 1987년 당시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세력 간 미봉적인 타협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벌써 손질을 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87년 이후의 온갖 정치적 혼란과 비효율도 모두 5년 단임제의 책임으로 돌려지고 있다.
4년 중임의 순수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 갖가지 개헌론도 무성하다. 하지만 5년 단임제가 그렇게 문제투성이냐는 반문도 제기되고 있다. 연세대 신명순(정외과) 교수는 5년 단임제 때문에 잘못된 것이 과연 무엇이냐고 되묻는다.
▦ 집권 후반기 레임덕 문제는 4년 중임제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다. 한번 당선되면 그만이어서 공약이행에 소홀하고 민심을 거스를 수 있다는 지적은 근거가 희박하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불일치 탓에 구조적으로 여소야대가 만들어지고 선거가 너무 잦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여소야대는 대통령제 국가들의 일상적인 현상이어서 다른 대책이 필요한 문제다. 임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줄일 게 아니라 국회의원 임기를 5년으로 늘리는 방법도 있다. 세계에서 의원의 임기가 5년인 나라는 128개국이나 된다. 의원 임기가 4년인 나라는 96개국에 불과하다. 5년 단임제를 너무 쉽게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것은 단견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