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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권의 외침이 들려야 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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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권의 외침이 들려야 할 곳

입력
2005.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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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계 독일인 칼리드 엘 마스리(41). 5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수용소 등에서 고문을 받았던 그에게 죄가 있다면 9ㆍ11 테러 용의자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것뿐이었다.

독일에서 20년을 살아온 이 자동차 세일즈맨은 2003년 12월 31일 아내와 다툰 후 바람을 쐬려 마케도니아로 여행을 나섰다. 휴식과 평안을 얻으려고 나섰던 7일 일정의 여행길은 그러나 평생 씻지 못할 고통과 공포의 시간으로 변했다.

마케도니아의 국경 검문소에서 여권을 내밀자 보안요원들은 다짜고짜 그를 모텔로 끌고 가 알 카에다 요원임을 자백하라고 추궁했다. 23일 동안 갖은 협박을 견딘 끝에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고 모텔 문을 나서는 마스리를 이번엔 다른 괴한들이 납치했다. 그가 두 눈이 가려진 채 수송기에 태워져 끌려간 곳이 악명 높은 아프간 미군 수용소라는 사실을 안 것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반복되는 구타, 벌거벗겨 세워놓기, 전기 충격과 약물 주입. 갖은 고문에 “너 하나쯤 죽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폭언은 그를 절망으로 몰고 갔다. 단식으로 저항했지만 37일째 되던 날 간수들은 그에게 강제로 음식을 삼키게 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5월 말 독일측 요원과 면담이 이뤄져 풀려난 마스리는 “그곳은 지옥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미군 수용소의 ‘공포 스토리 ’는 마스리의 증언 뿐이 아니다. 마스리의 비극은 테러와의 전쟁 이면에 가려진 인권 실종의 현장을 상기시키는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 학대의 잔상이 가시기도 전에 쿠바의 관타나모 미 해군 기지에서, 아프간에서, 동유럽의 비밀 수용소에서, 고문과 인권 유린을 규탄하는 비명 소리가 터지고 있다.

테러 용의자와 테러 혐의. 이는 테러 재연의 강박관념에 쫓기는 미국 정부에 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정의 까다로운 제약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 논리로 통했다.

테러 용의자에게는 포로의 예우가 필요가 필요한 ‘적군’ 대신 ‘적 전투원’이란 명칭을 붙이고, 민간 법정의 심리를 피하기 위해 쿠바의 미군 기지에 이들을 가뒀다. 테러 용의자가 ‘특별 이송’되는 외국의 수용소는 새로운 ‘심문기법’이라는 명분으로 고문이 이뤄지는 치외법권 지대였다.

한 명의 테러리스트도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절대 명제는 마스리 같은 무고한 희생자가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허락할 리 없다. 있더라도 큰 명분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쯤으로 여겨진다. 관타나모에 수용했다 풀려난 105살 아프간 농부의 꾸부정한 모습은 ‘적 전투원’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미국은 침묵하고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은 역내 비밀 수용소 실재 여부와 해명을 요구하는 유럽 각국을 향해 오히려 “미국은 미국인의 생명뿐 아니라 유럽인의 생명도 구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지난해 세계를 분노케 했던 아부 그라이브 포로 고문 사건에 대한 조사는 실행자 몇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10일로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다시 맞는다. 이 날을 즈음해 서울에서는 국내외 인권 단체들이 주관하는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시작됐다.

미 국무부로부터 북한 인권 개선 사업을 위한 자금을 지원받은 미국의 프리덤 하우스도 행사에 어깨를 내밀고 있다. 지난해 프리덤 하우스가 워싱턴의 최고급 호텔에서 열었던 제1회 북한인권국제대회를 참관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미 정부 예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북한 인권 현실의 개선을 요구하는 함성이 메아리칠 것이다. 그 외침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고스란히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동시에 아프간과 관타나모의 미군 수용소에도 인권 존중의 고결한 울림이 퍼진다면…. 인권이 그토록 소중한 가치라면 인권의 상실을 재는 잣대도 곧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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