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명품브랜드에) 절대 지지 않는 옷, 한국 디자이너의 자존심을 건 옷을 만들겁니다.”
중견 디자이너 한혜자씨가 본격 오트쿠틔르(고급 맞춤복)를 표방한 새 브랜드 ‘HANEZA(하네자)’를 내놓았다. 지난 달 30일 청담동 사옥에서 가진 오트쿠틔르 출시 기념 패션쇼는 디자이너 진태옥 오은환, 패션 모델 김동순,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등 100여명의 패션계 인사들로 성황을 이뤘다.
‘추락한 천사’라는 제목 아래 열린 패션쇼에는 고급 실크와 시폰 소재에, 자수와 비즈 장식으로 수공예의 호사스러움을 더한 파티드레스와 웨딩드레스 등이 선보였다.
일일이 디자이너의 손끝으로 가봉 작업을 하는 맞춤 드레스들이라 디자인 하나당 2~3벌만 제작하고 주문생산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가격은 200~1,000만원을 호가하지만 벌써 전문 연주자와 유명연예인들의 구입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씨는 “디자이너의 창의력을 맘껏 과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맞춤 드레스 시장에 눈독을 들여왔다”고 말한다. 일상의 옷이 아니라 특별한 날을 위한 옷을 따로 마련할 만큼 국내 파티 문화가 성숙했다고 판단한 것이 올해 초.
청담동 본사 사옥을 새롭게 단장하고 지하 1층에는 전용 매장도 따로 마련했다. “오랜만에 정말 하고 싶은 옷을 하게 됐다”는 충족감은 “이젠 타협하지 않고 내 스타일대로 가겠다”는 각오로 이어졌다.
한씨는 신촌 이화여대 앞에서 1972년 말 ‘이따리아나’라는 상호로 부티크를 열고 패션계에 투신했다. 세계 패션 그룹(FGI) 한국 지회 회장을 역임했고 디자이너 그룹 SFAA의 일원으로 국내에 컬렉션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예술적 감성을 옷에 녹여내는 것으로 정평을 얻었지만 정작 비즈니스가 커갈수록 디자이너로서의 고뇌도 깊었다.
“패션쇼에 선보이는 옷과 매장에서 파는 옷은 완전히 다른 것이 국내 하이패션 산업의 현주소예요. 고객이 늙어가면서 브랜드도 함께 늙는 것, 인정하기 싫은데 자꾸 시장과 타협하게 되더군요. 한동안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댔는데 이제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선 기분입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요.”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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