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일본 자민당 창당 50주년 기념식에서 개헌안 초안이 발표되었다. 자민당은 2000년부터 당 내부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해 평화헌법 개정 준비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작년 12월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본부장을 맡은 신헌법제정추진본부와 헌법기초위원회를 신설하여 개헌안 조문화 작업을 해 왔는데, 그 최종적인 성과물이 나온 것이다.
개헌안 초안은 전문에서 상징 천황제의 유지를 확인하였고, 이어서 국민 주권과 민주주의, 자유주의와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와 국제협조주의의 기본 원칙을 계승한다고 밝혔다.
본문에서는 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를 규정하였던 기존 헌법 제9조 2항을 크게 수정하여 총리를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자위군 보유를 명기하였고, 자위군의 임무와 활동에 관한 관련규정을 포함시켰다.
●자위대 강화 보통국가 노선
1946년 제정된 평화헌법은 군국주의 재현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제1조에서 8조까지 상징 천황제를 규정하여 천황의 통수 대권을 규정하였던 메이지 헌법과 달리 천황의 정치 개입을 차단한 점, 제9조 1항의 전쟁포기 조항과 2항의 육해공군 전력 보유 금지 조항, 제66조의 문민통제 조항, 그리고 전문의 평화주의 선언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번 개헌안 초안을 보면 평화헌법의 기본 정신과 조문들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만 1954년 창설되어 이제는 정규군의 면모를 갖추게 된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적으로 인정한 점이 특징이다.
물론 자민당의 헌법 개정안 초안이 공표되었다고 해서 즉각 개헌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의를 존중하는 일본 정치 특성상 연립여당 내부 및 야당과의 조정을 거쳐야 한다. 개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최소 3~4년 이상은 소요될 것으로 보이고, 자민당의 개헌안 초안에도 상당한 수정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21세기 일본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전략의 방향성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이번 개헌안 초안 공표의 의미는 적지 않다. 일본은 전후 한결같이 소위 ‘요시다 독트린’, 즉 군사적으로는 경무장과 전수방위를 표방하면서 경제발전을 중시하는 국가전략을 취해 왔다.
그러나 21세기의 일본은 개헌안 초안의 자위군 명기조항에서 나타났듯 국내적으로 국방체제를 공고히 하고 대외적으로 안보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보통국가 노선을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완료된 유사관련 법제의 입법화, 현재 추진중인 미ㆍ일 동맹 강화, 그리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 등이 보통국가 노선의 추구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라 21세기 일본은 외교무대에서의 발언권도 강화해 나갈 것이고, 안보 측면에서의 역할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보통국가 노선의 추구가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게 될 것인가는 단언하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미ㆍ일 동맹이 유지되고 문민통제와 평화주의의 헌법 정신이 남아있는 한 일본의 변신에는 제약이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통국가 노선의 추구에 따라 일본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전 50여 년간의 군국주의와 전후 50여년간의 평화국가 이미지와는 다른 제3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상호공영 위한 대화 절실
그러한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하지 않고,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 지도자들의 철저한 역사인식과 세련된 외교정책이 요구됨은 재삼 부언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도 변화하는 일본이 한반도 및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각적 방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상호공영의 동아시아 질서 구축을 위해 다양한 레벨에 걸친 일본과의 깊은 전략적 대화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