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에 완패한 뒤 지리멸렬한 모습으로 일관했던 영국 보수당이 새 당수 선출을 계기로 이미지 쇄신에 나섰다.
6일 결선투표 끝에 보수당의 좌장에 오른 데이비드 캐머런(39)은 의정 경력 4년에 불과한 초선의 하원의원이다. 1783년 24세로 당수 겸 총리에 올랐던 윌리엄 피트가 보수당의 역대 최연소 당수 기록을 갖고 있지만 이는 20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다. 때문에 30대 보수당 당수의 탄생은 그 자체로 영국 정계에 새로운 자극을 주고 있다. 1994년 41세로 최연소 노동당 당수에 오른 블레어 총리에 빗대 ‘보수당의 블레어’라는 말까지 나온다.
보수당은 캐머런을 당수로 낙점하기까지 블레어 정권에서만 무려 4명의 당수를 교체했을 만큼 마음고생이 컸다. 그러나 이번에는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3기 연속 집권한 노동당에 대한 ‘피로현상’이 유권자들 사이에 확연한 데다 차기 총선(2009년) 때 캐머런의 상대로 유력시되는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53) 재무장관이 50대의 기성세대라는 점에서다.
마치 97년 존 메이저 총리가 당시 54세의 나이로 10년 연하의 블레어에 패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당 간판만 바뀌어 똑같이 재현된 듯한 분위기다. 캐머런의 당수 선출 직후 실시된 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도 보수당이 노동당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캐머런 신임 당수는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중도 우파다. 보수당의 전설인 윈스턴 처칠이나 마거릿 대처 전 총리도 과거의 인물일 뿐 현재의 보수당에는 맞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그는 당수 선거전에서 ‘현대적이고 온정적인 보수주의’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시장을 중시하는 전통 보수주의 철학은 유지하되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를 보다 중시하지 않으면 새로운 보수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최근까지 진보적 좌파 일간지인 ‘가디언’에 칼럼을 고정적으로 기고할 정도다. 이날 당수 수락연설에서 그는 “노동당의 정책이 옳다면 옳다고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정권의 뒷다리나 물고 늘어지는 희비극적인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낡은 정치 청산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캐머런은 명문사학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대를 수석 입학한 전형적인 엘리트이자 명문 집안 출신이다. 그에게서 귀족풍이 아닌 분위기를 찾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런 평판을 의식해서인지 그는 서민적, 대중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자전거로 매일 출퇴근하고 샴페인 대신 흑맥주를 마시며 말보로 담배를 피운다. 집안에 있을 때는 여느 젊은이처럼 록 음악을 즐긴다.
보수당은 97년 총선 패배 이후 당시 36세의 윌리엄 헤이그를 당수로 전격 발탁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 캐머런이 ‘제2의 블레어’가 될지 아니면‘제2의 헤이그’가 될지 두고 볼 일이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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