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드라마 PD들의 주도하는 시스템에서 배우들이 힘이 방송사 편성까지 좌지우지 하는 시기를 거쳐 이제는 다시 작가 위주로 드라마 제작이 돌아가는 국면이에요. 요즘엔 A급 작가가 곧 드라마 편성을 보장합니다.” (싸이더스 HQ의 드라마 본부 장진욱이사)
전도연 정우성 등이 소속된 국내 최대의 연예 매니지먼트사로 최근 ‘봄날’ ‘건빵 선생과 별사탕’ 등의 TV드라마를 제작한 싸이더스 HQ는 최근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 죽일 놈의 사랑’의 작가인 이경희 작가를 영입했다. 싸이더스 HQ는 이 외에도 ‘피아노’의 김규완 작가와 ‘위풍당당 그녀’의 배유미 작가와 계약을 맺은 상태다.
‘불량주부’와 ‘프라하의 연인’을 만든 올리브나인은 한 벤처 투자사로부터 ‘작가 펀드’라는 명목으로 14억을 투자 받았다. ‘프라하의 연인’의 김은숙 작가와 ‘파리의 연인’의 강은정 작가, ‘단팥빵’의 이숙진 작가 등이 계약되어 있는 올리브나인은 이 돈으로 작가의 추가 영입에 나설 계획이다.
이처럼 외주 제작사들이 작가 영입에 나서면서 드라마 작가들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몇몇 특급 작가에게만 해당 됐던 편당 원고료 1,000만원의 해당 범위가 A급 작가 선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 외주 제작사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요즘에는 캐스팅이 좋아도 작가가 검증되지 않은 경우에는 편성을 꺼리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신생 외주 제작사의 경우 작가 잡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그 때문에 A급으로 분류되는 작가들이 편당 1,000만원 가량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가 모시기 경쟁은 ‘스타 권력화’의 문제가 집중 제기된 올 한해의 학습 효과를 반영하는 것이다. 스타들의 몸값이 치솟고 이들의 캐스팅 여부가 방송사 편성을 결정 짓는 요인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권상우와 김희선을 내세운 ‘슬픈연가’와 이동건 김하늘 주연의 ‘유리화’부터 김정은의 출연 거부로 파문을 일으켰던 ‘루루공주’까지 스타만을 내세운 드라마들이 흥행과 작품성 모두에서 대부분 실패했다.
반면, 결혼 생활의 실패 이후 부정적 이미지로 추락했던 최진실이 문영남 작가의 ‘장밋빛 인생’에서 전과는 180도 다른 이미지를 얻으며 재기했다. 또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의 김운경씨가 쓰고 있는 KBS 2TV ‘황금사과’도 대형 스타 없이 탄탄한 작품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 특유의 통찰력으로 시청자들을 붙들고 있다. 그런가 하면 MBC ‘달콤한 스파이’의 이선미 김기호 작가 부부는 외주제작사 LK제작단을 직접 차린 사례. 바야흐로 스타 PD가 외주 제작사를 차리는 시대를 넘어서 스타 작가가 드라마 제작사를 세우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작가의 역량이 드라마의 성패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는 한국적 제작 환경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는 미국처럼 대본이 사전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이 시작되기 때문에, 방영 시작 이후로는 감독이나 연기자가 철저하게 드라마 대본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류도 드라마 업계의 관심이 작가들에게 쏠리게 만든 큰 요인이다. 콘텐츠의 품질 향상이 한류 지속의 제1 조건으로 부상하면서 1차 생산자인 드라마 작가들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평가 받고 있는 것. 중국에 진출한 방송 콘텐츠업체인 ㈜오렌지의 김동렬 대표는 “중국 드라마는 50대 ‘공훈작가’들이 사실주의에 입각한 대본을 쓰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그런 점에서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품질이 높은 대본을 생산할 수 있는 드라마 작가야 말로 한류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지적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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