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수당이 이제 39살인 하원의원 데이비드 캐머론을 새 당수로 뽑았다. 1997년 토니 블레어 현총리를 앞세운 노동당에 정권을 내준 이래 총선 때마다 연패, ‘녹슨 만년야당’으로 전락한 보수당의 개혁과 재집권을 기약하는 파격적 선택이다.
은퇴한 연금 생활자가 지지계층을 대표할 정도로 보수전통이 깊은 당원들의 우편투표에서 캐머론은 압도적 표차로 데이비드 데이비스(57)의원을 눌렀다. 캐머론은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당 정책기획국에서 오래 일한 엘리트지만, 의원 경력은 4년에 불과하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없는 캐머론의 도약은 블레어가 42살 때인 1995년 노동당 개혁과 집권 열망을 업고 당수로 선출된 것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전통적 당 이념과 노선의 변화를 외치며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빼어난 외모와 언변으로 당원과 대중을 매료시켰다.
블레어가 좌파 노선을 크게 벗어난 시장중심주의와 세계화를 표방했듯이, 캐머론은 좌파의 구호인 분배와 사회적 약자 보호를 중시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세운다. 성장기가 불우했던 블레어와 대조적으로 명문가 출신인 캐머론을 ‘보수당의 블레어’라고 부르는 연유다.
■이를 두고 2007년 총선 승리를 위한 블레어 따라잡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념적 중간계층을 유인하려는 모방전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이념적 경계가 무너지고 좌우 정치세력이 모두 ‘개혁적 중도’(the radical center)를 지향하는 것이 대세로 굳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민주와 법치주의, 시장자유와 국가개입의 경계,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약자보호 등의 이념과 정책노선은 물론이고, 국제 질서 속의 국가 행보 등에 관해서도 국민적 합의가 형성된 마당에 정당들이 좌우로 갈려 서로 다투는 것은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세력은 뭘 다퉈야 하는가. 정책차이가 없으니 대연정이라도 해야 할까. 영국 언론이 제시하는 답은 물론 그게 아니다. 국민적 합의를 따라잡지 못한 낡은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 절박한 과제라는 것이다. 주제넘게 유권자를 유인하겠다고 나서기에 앞서, 스스로 시대착오적 의식과 행태를 개혁하라는 충고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내부의 좌우 극단주의와 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힘겨울 것이고, 그 싸움이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언뜻 비슷하게 움직이는 우리 정치세력도 새겨 들을 만 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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