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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못다핀 꿈 후배들이 피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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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못다핀 꿈 후배들이 피우길"

입력
2005.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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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동생을 보는 것만 같네요. 동생의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6일 오전 한국외대 본관에서는 조촐하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대학 재학 중 입대했다 군에서 사망한 동생을 기려 30대의 평범한 직장인이 동생의 모교에 매년 400만원씩 20년간 장학금을 기부하기로 한 것. 한국외대 경제학과 95학번인 고(故) 안 혁씨의 형 상현(36)씨는 6일 아버지 안 욱(63)씨와 함께 한국외대를 방문해 장학금 약정식을 갖고, 동생의 2005학번 과후배 노성준씨에게 첫 번째 장학금을 전달했다. LG필립스LCD 직원인 상현씨가 1월1일자로 미국 시카고지사로 발령을 받아 출국 전에 부랴부랴 마련한 행사였다.

기증식에 참석한 아버지 안 욱씨는 “첫 장학생으로 선정된 노군이 혁이랑 헤어스타일도 똑같고 인상도 너무 비슷하다”며 “꼭 자식이 살아온 것만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동생 안 혁씨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1995년 12월 입대했다가 97년 5월 간암판정을 받고 의가사제대를 한 지 20일 만에 사망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죠. 시름시름 아프길래 군대생활이 고생스러워서 그런가 보다 하고 감기몸살 약만 먹였는데….”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4년 7월 담낭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원망이 왜 없었겠습니까. 청와대에 탄원도 하고, 국방부, 육군본부 등 발이 닳게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이젠 원망하지 않아요.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것으로 만족합니다.”

안씨 가족이 장학금 기증에 뜻을 모은 데는 “먼저 간 아들을 기려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유언이 있었기 때문. 상현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해봐서 학비 걱정하는 학생들의 딱한 사정을 잘 안다”며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동생의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평생 교직생활을 하다 2004년 은퇴한 후 혼자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 안 욱씨는 “부자들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그간 겪은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들이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더 뿌듯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외대는 가족들의 뜻대로 매년 사정이 어려운 경제학과 학생을 선정해 ‘안혁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고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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