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6일 유럽 순방의 첫 방문지인 독일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회담을 가진 뒤 “부시 행정부는 우리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국제적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로 떠나기 앞서 “미국은 테러 용의자들을 비행기를 이용해 다른 나라 등으로 이송(rendition)하고 있으며 이는 합법적인 무기”라고 선언한데 이어 미국이 주권을 침해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키우는 유럽 각국을 향해 도리어 강공책을 취한 셈이다.
지금 유럽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여러 곳에서 운영해온 것으로 보도된 해외 비밀수용소 때문에 들끓고 있다. 그러나 라이스 장관은 “미국은 미국인의 생명 뿐만 아니라 유럽인의 생명도 구하고 있다”고 맞섰다.
라이스 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정부에서 외교사령탑을 맡으며 유럽과의 관계회복을 첫번째 과제로 삼았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악역을 통한 해결사 역할을 자임한 셈이다.
라이스 장관은 문제의 CIA 해외수용소 실재 여부에 대해선 “첩보, 사법, 군사작전의 성패에 영향을 미칠 정보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없다”고 말해 논의의 원천봉쇄를 시도했다.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라이스 장관이 비밀 수용소 논란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라이스 장관은 CIA 비행기가 유럽국의 공항을 이용하는 것을 ‘이송’으로 규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줬다.
나아가 “테러 공격을 막기 위해 우리와 협력할지 말지는 그 나라 정부와 국민이 결정할 일”이라고 유럽을 은근히 압박했다. 이 같은 접근방식은 유럽의 시민들에게는 평소 라이스 장관 답지 않게 상당히 오만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라이스는 인기가 떨어진 부시 행정부의 유일한 스타였다.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공항 영접행사에서 스모 챔피언과 포옹을 한다거나,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을 자신의 고향인 앨라배마주로 초청하면서 매스컴의 조명을 즐겼다. 뉴욕타임스는 라이스 장관이 ‘록 스타’에 버금가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보도했다.
물론 라이스가 CIA와 국방부가 저지른 실책을 수습해낸다면 그의 위상은 정부내 2인자 반열로까지 높아질 수 있다.
지금까지 그는 ‘소프트 콘디’ 전략으로 재미를 보았다. 하지만 ‘스트롱 라이스’로의 변신이 성공하기에는 유럽의 한파가 너무 거세다는 지적도 많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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