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가 7일 인혁당 사건은 고문 등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이것이 인혁당 사건 재심 개시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법원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인혁당 사건 관련자 유족들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이 있었고, 관련 진술조서가 조작됐다”고 발표한 것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 23부(이기택 부장판사)가 재심 개시 여부를 심리해왔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재심 요건인 ‘명백한 새로운 증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형사소송법은 ‘유죄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무죄 또는 면소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될 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사위는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서 등의 구체적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고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직원이나 경찰관 등의 자백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기택 부장판사는 “정권 차원에서 지시했다는 등의 정황 증거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겠지만 재심 개시 여부를 법리적으로 판단하는 입장에서 볼 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국정원이라는 행정기관의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특별법에 의해 만들어진 의문사위보다 법적 지위도 낮다. 이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중정의 후신이므로 제3자인 의문사위보다 더 책임감과 공신력이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수사를 담당한 직원의 자백이 아닌 이상 국정원 자체를 당사자로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용훈 대법원장이 9월 취임 후 재심을 통한 과거사 정리 등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혀온 만큼 재판부의 전향적인 결정이 나올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이 부장판사는 “법 규정대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더라도 주변 정황 증거를 갖고 조속한 시일 내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의 조사 결과가 ‘명백한 새로운 증거’는 아니지만 정황 증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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