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결산하면서 제너럴 모터스(GM)의 릭 왜고너 회장만큼 참담한 심정을 느낀 최고경영자(CEO)도 많지 않을 듯하다. 아무리 세상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지만 미국 최대의 자동차 회사 GM의 몰락은 그만큼 충격적이다.
GM이 어떤 기업인가. 70여년간 세계 자동차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해 온 제조업체의 자존심 아니었던가. 미국 자동차시장 점유율 50%를 자랑하던 GM이 만든 캐딜락은 ‘최고 부자들이 타는 차’의 상징이었다.
GM이 거둔 성공은 살아있는 신화가 됐고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성채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즘의 GM은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망가진 모습 투성이다. 미국 내 시장점유율은 25%대로 떨어졌고, 회사채는 쓰레기채권(정크 본드)취급을 받고 있다. 5개 공장을 폐쇄하고 3만 명을 해고하겠다는 긴급 처방도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주가 하락에 이어 도산위기설마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GM이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향후 2년 이내에 파산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걸핏하면 파업을 들먹이는 노조에 굴복해 매년 임금을 올려주고, 퇴직자에게까지 복지 혜택을 퍼주는 방만한 경영을 일삼다 거덜이 난 셈이다. 부도 우려가 1년 이상 지속되면 그 회사는 무너진다는 게 과거의 경험이다. 크라이슬러와 닛산이 그랬고 기아 대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늙은 공룡’ GM은 내년에 세계 자동차 업계 1위 자리마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 내줄 것이 확실하다. 도요타는 세계 2위였던 포드자동차를 3위로 밀어낸 지 3년 만에 GM을 누르고 세계 1위의 영예를 안게 된다.
GM의 몰락은 딱한 일이지만 현대 기아차 등 국산차 업체에게는 반사이익이 아닐 수 없다. 현대차의 올 1~3분기 미국 판매량이 작년 동기대비 9.6% 늘어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경영난에 빠진 GM과 포드 등 미국 자동차 업체의 위기를 틈타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 셈이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의 ‘행운’과는 정 반대 현상이 반도체 업계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기업을 견제하거나 주도권을 빼앗으려는 외국 기업들의 공세가 강도를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메모리반도체와 액정화면(LCD)을 비롯한 디스플레이 부문에서의 견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기업간 연합전선 구축은 물론, 특허나 관세를 활용한 ‘트집잡기’ 등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된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업체인 미국의 인텔도 지난 달 마이크론과 함께 26억 달러씩을 투자해 합작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끌어 내리기 위한 공세다. 히타치 등 일본의 5개 반도체업체는 차세대 공장을 공동 설립해 첨단 시스템 LSI(비메모리)를 만들기로 했다. 이들의 생산이 시작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부문에서 거센 협공을 받게 된다.
GM의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것은 자동차 업계 뿐만이 아니다. 지금 잘 나가는 기업이 아차 하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정도로 세계의 경영환경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세계 1위 수성은 힘들고 후발 주자들의 추격은 거센데 강성노조와 반 기업정서에 발목을 잡혀서야 기업의 경쟁력이 나올 리 없다. 1등 기업의 몰락이 시사하는 교훈은 넓고도 깊다.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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