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가 남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직후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부부 앞으로 보낸 구명요청 서한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대중도서관은 6일 제1회 한국학 국제학술회의(7일)를 앞두고 DJ 관련 미공개자료 9건을 공개했다.
1980년 10월1일 인편을 통해 비밀리에 보내진 이 여사의 서한에는 남편을 살리려는 절절함이 가득했다. 이 여사는 “남편은 폭력적인 국가전복 음모를 꾸몄다는 근거없는 죄목으로 기소됐지만 남편은 한민통(1973년 일본에서 조직된 해외민주화운동단체)과 어떤 접촉도 한 바가 없다”며 “재판은 김대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는 또 “기도로 나날을 보내면서 신이 제 남편으로 하여금 정치에서 물러나 평생 기독교 신앙 보급을 위해 헌신토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믿게 됐고, 남편도 같은 생각”이라며 “하지만 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이가 어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 우리를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여사는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숱한 도움을 받고있어 미국의 뜻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카터 대통령의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특히 “이 서한이 공개되면 정부가 가혹한 보복을 가할 것이니, 극비리에 처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서한은 지인을 통해 로버트 키니 전 주한 연방직원(정보기관원), 도널드 그레그 미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책임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거쳐 같은 달 20일 카터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카터 대통령은 서한을 담은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의 보고서에 친필로 “브레진스키, 우리는 김대중을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할 것이다(We will continue our efforts on Kim’s behalf. J.C)”라는 메모를 남겼다. 김대중도서관은 미국 정부로부터 입수한 브레진스키 보고서도 공개했다.
브레진스키는 보고서에서 “남한과 미국의 동맹유지를 위해서는 김대중에 대한 사형판결이 감형돼야 한다. 우리는 모든 채널을 통해 압력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견을 적었다. 특히 보고서에는 “지난 주 전두환 대통령은 구명 문제에 대한 이곳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 믿을 만한 장교를 미국에 보내왔다”는 내용도 있어, 5공 정부가 미국에 밀사를 파견, 협상을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와 함께 DJ가 1970년대 초ㆍ중반 해외민주화운동을 할 당시의 사료도 공개됐다. DJ는 1973년 7월6일 미국 한민통 준비위결성 당시 회의록에서 “미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자”는 한 인사의 주장에 반대하며 ‘대한민국 지지, 독재정권 반대’라는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또 ‘선(先)통일 후(後)민주화론’에 대해 “민주체제 확립이 선결과제이고 그 이후 통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도서관측은 DJ의 성적표와 상장 등 유ㆍ소년기 자료와 71년 대선관련 자료도 추가 공개할 예정이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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