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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역사의 희생자 소리 들어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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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역사의 희생자 소리 들어줄 때

입력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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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1일 광복 60년 만에 출범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60년은 전쟁, 빈곤, 독재로부터 경제 성장과 민주화로 나아간 숨 가쁜 질주의 세월이었다. 민족은 여전히 분단된 채 남아 있지만, 한국은 이제 제법 품격을 갖춘 나라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으며, 법적ㆍ제도적 절차가 뿌리내린 민주주의 사회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우리 사회는 성공적인 정치 민주화와 함께 5ㆍ18, 4ㆍ3, 민주화운동 희생자 보상 등 과거사 청산 작업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현재 진행 중인 식민지 시기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과 함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한다면, 국제사회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 대하여 당당한 자세로 ‘문화적으로 다듬어진 국가 한국’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해방된 지 60년 만에 나라다운 나라로 전환되어 가는 마지막 고비를 넘고 있는 셈이다.

●과거사위 출범 반대는 속좁아

현대 한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치어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작업이 왜 중요한가.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정치제도나 경제적 부 못지않게 이웃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고, 그것을 보편적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권력에 의해 혹은 다수의 횡포에 의해 납득할 수 없는 죽음과 희생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호소할 곳 없이 침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찌 그런 사회를 문명이나 문화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사실 이들이 보낸 지난 55년의 세월은 소리 없는 통곡의 세월이었다. 이들에게 강요된 침묵 때문에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생존의 위협이나 이기심 때문에 들으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이 역사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의 한구석에 남아 있던 야만적 요소를 털어버리는 작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위원회의 출범을 전후하여,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또 과거사 타령이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일부에서는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 덧나게 하고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할 줄 모르는 나라가 국제적으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다른 나라에 요구하는 잣대를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해 본다면, 위원회 출범 자체를 왈가왈부하는 것이 얼마나 속 좁은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앞날은 별로 순탄치 않아 보인다. 위원회의 정치적 토대는 취약하고 법적으로는 모순적 요소를 안고 있다. 일할 인력은 감당해야 할 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당시의 전쟁은 내전이면서 국제전이었기 때문에 우리 국가나 시민사회의 힘만으로는 진실에 완전히 다가갈 수 없다.

또한 실제 작업을 통해 진실 규명이 정말 화해와 상생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따라서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너무 큰 짐을 지고 출발하는 모습을 안쓰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관용과 신뢰의 사회 만들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사명은 막중하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강요된 침묵으로부터 벗어나 소리를 내게 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한국의 모든 시민들에게 50년 이상 저 깊은 땅속에서 울려 나오는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주는 일, 이것이 이들에게 맡겨진 책무이다.

우리가 이 위원회를 통해 관용과 신뢰의 수준이 높은 사회, 그리고 역사의 희생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의 폭이 큰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토론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원회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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