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은 공약(空約)이 될지 모르는 공약(公約)을 마구 쏟아 놓는다. 포퓰리즘에 찌든 후진 정치일수록 더 심하다. 국익이나 실현 가능성 등은 무시하고 단순히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한다. 이러한 환심성 공약은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공약, 시기상조인 공약, 지켜서는 안 될 공약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YS(김영삼)는 “목을 걸고 쌀 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공약과 함께 당선되었다. 그러나 쌀 개방은 한국 대통령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국제적인 대세였기 때문에 당연히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공약(空約)이 되었다.
당시 농수산부 장관 등 실무팀은 현실적으로 막을 수 없는 쌀 개방을 막아보고자 동분서주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잃을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무분별한 공약 때문에 국익에 큰 손상을 입은 것이다.
●지켜서는 안 될 '행정수도'
DJ(김대중)의 주 5일 근무제 공약은 장기적으로 지향할 바이긴 하지만 시기상조였다. 주 5일 근무는 국민소득이 2만 달러는 넘어야 본래의 의미를 살리고 효과를 볼 수 있다. 소득이 충분치 못할 때의 여가는 엉뚱한 사회문제만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를 성급히 실시한 후 이혼율이 급증한 프랑스의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후 10년 가까이 답보 상태인 한국 경제로서는 주5일 근무는 사치이고 시기상조이다.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 늘어나리라던 고용도, 활성화되리라던 관광산업도 아직 감감 무소식이다. 혹시 가정불화로 연결되어 이혼율을 높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확실한 것은 끊임없는 노사 불안과 중소기업의 인력난 등이다.
결국 주5일 근무제는 외환 위기로, 그리고 설익은 구조조정으로 골병 든 한국 경제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충청도 이전 공약은 지켜서는 안 되는 공약의 좋은 예이다. 수도권 집중 문제는 이미 정부기관 몇 개 옮기는 것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천도의 수준이 아니면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천도는 수도권의 붕괴=대한민국의 붕괴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졸속으로 다루어서는 결단코 안 되는 일이다.
더욱이 통일이 눈앞에 있다면 행정수도 이전이든 천도이든 수도의 남하는 거꾸로 가는 정책이다. 실효성도 없으면서 엄청난 경비를 부담하기보다는 수도 서울이 갖는 대외 경쟁력을 살리면서 통일 이후까지 생각하는 수도권 집중 완화를 생각해야 한다. 핵심을 간과한 채 선거운동 막바지에 특정 지역의 표를 얻기 위해 다분히 즉흥적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한 것은 포퓰리즘적 한탕주의의 극치이다.
공약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공약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약(空約)이 되는 것을 방치하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공약이라도 마구 하고 보자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조장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켜서는 안 되는 공약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드시 잘못된(양심적이지 못한) 공약이었음을 진솔하게 사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칼자루를 잡았다 해서 정치적인 부담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지켜서는 안 될 공약을 밀어붙이는 것은 참으로 중대한 실수이다.
●국민투표 안한 건 제2실수
충청도는 위기감과 사악한 투기심리가 혼재된 묘한 분위기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중지하면 충청도가 가만 있지 않고, 밀어붙이면 수도권이 반발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호남의 지역 갈등 대신 수도권ㆍ충청권의 지역 갈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별로 설득력 없는 이유로 국민투표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두 번째 실수이다. 헌법재판관을 바꾸면서까지 정치적인 독선과 고집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것은 국가 발전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더 치명적인 실수이다.
노영기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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