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50대 초반 A씨는 교육을 위해 재산을 처분해 가족을 이민 보냈다. 6년간 서울에서 돈을 벌어 꼬박꼬박 미국에 송금했다. 고혈압 때문에 항상 약을 먹었다. 저녁에 원룸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다 쓰러졌고, 닷새 후 발견됐다. 40대 B씨는 자신의 아버지 묘소 옆에서 목을 맸다. 그 역시 아들딸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혼자 살았다. 묘소 앞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가 놓여 있었다.
활달해 보이던 A씨였지만 평소 가족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단다. 의사는 “당시 누군가 옆에 있었더라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친구는 그가 의외로 경제적 압박을 상당히 받았다고 전했다. B씨는 유서를 남겼다. “조금 있는 유산은 처분해 처와 아이들에게 송금해 주고, 자살했다고는 말하지 말아달라.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했다.
기러기 아빠들이 많다. 한다리만 건너면 쉽게 기러기가족을 만날 수 있다. 대학입시가 시작되고, 초ㆍ중ㆍ고교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누구도 기러기아빠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 사건의 경우 그 끝은 지극히 예외적이지만 그들이 겪었던 과정은 한국 기러기아빠들의 전형일 것이다.
대부분이 씩씩하게, 장엄하게 외로움과 경제적 압박을 견뎌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먹다 남은 소주병’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예비 기러기아빠들은 넘쳐 나고 있다. 작은 원룸의 수요가 늘고, 파출업 청소대행업 세탁업 등도 성업 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유학생은 약 16만명. 그 중 1만5,000여명이 초ㆍ중ㆍ고생이다. 이들에게 송금된 돈은 2조5,000억원, 공식집계에서 누락된 경비 등을 합치면 5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1~2만명 기러기아빠들의 송금액은 월 평균 418만원. 대부분 40대에서 50대 초반, 활동이 왕성하고 사회적 효율성이 높은 시기의 가장들이다.
외로움과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며 동아리도 조직하고 인터넷사이트도 만든다. 입시와 사교육비, 폭력과 부조리의 학교 등은 이미 얘깃거리 축에 끼지 않는다. 한국에서 40년 이상 자란 사람이 ‘내 아이는 절대 여기서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올려놓고 있다. “영어 때문에 느꼈던 벽을 자녀들은 뛰어넘게 해주고 싶다”는 푸념이 많다.
누구나 기러기아빠 식의 조기유학에는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나, 진학을 결정해야 할 상황에 닥치면 어떻게 판단할 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들은 말한다. “컴컴한 집으로 퇴근하기가 싫다. 금요일은 청소와 빨래를 하는 날. 하숙집보다 못한 방, 대화할 사람이 없다. 혼자 과일을 꺼내 씹지만 맛을 모르겠다. 아이의 전화를 받고 펑펑 울었다.” 적극적인 말도 끼어 있다. “권태기에 각자 자기발전을 위해 소중한 시간이다. 떨어져서 살면 가족의 소중함도 더해진다. 경쟁력 있는 사람, 국제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다는 생각이다. 국가적 대책은 당연하지만 개인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 혼자 남겨진 아빠의 마음이 피폐해 지고 있다. 인생의 전성기인 40대 전후에 부부가 오래 떨어져 산다는 것은 섭리에도 어긋난다.
가장의 피폐해진 마음은 가정의 황폐화로 이어진다. 또 하나, 중요한 시기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라는 인(印)을 새겨주지 못하다 보니 어느날 갑자기 ‘아빠라는 호칭의 친절한 아저씨’로 전락한다.
상처를 알고 치유를 시작하자니 이미 나이를 먹었다. 너무 굳어진 가족관계에 놀란다. 영어가 뭐길래, 미국이 뭐길래 이런 것들까지 감수해야 하나. 이제 영어나 미국은 가깝고도 많이 우리 주위에 다가와 있다.
몰라서 그러는 줄 아느냐고. 그렇다면 적어도 조기유학의 유혹은 벗자. 차라리 그 돈을 적금에 넣어 두었다가 대학이나 대학원 때 보내자. 자립한 뒤라면 기러기부부는 있을지언정 기러기아빠나 기러기엄마와 같은 외기러기는 없지 않을까.
정병진 부국장 겸 사회부장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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