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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첫눈처럼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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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첫눈처럼 눈이 내렸다

입력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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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첫눈이 아니지만, 우리들 눈엔 첫눈처럼 보이는 눈이 내렸다. 이상하게 매년 첫눈은 그것이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도 모르게 내리다 말다 그냥 가버리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첫눈’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첫눈다운 인색함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에서 자랐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보니, 첫눈은 늘 대관령 동쪽보다 이쪽 서울이 빠르다. 아직 잎이 다 떨어지지 않은 나무 위에 흰 눈이 쌓였다.

나무 중에 봄에 가장 먼저 푸른 기운을 띠어 초겨울까지도 푸른 잎을 달고 있는 버드나무 위에도 흰 눈이 쌓여 있고, 아직 붉은 기운으로 서 있는 단풍나무 위에도 흰 눈이 쌓여 있다.

눈을 보면 아직 아이들처럼 반갑다. 눈이 내리던 밤에도 춥다며 나가지 않겠다는 아내를 억지로 끌고 밖에 나가 눈을 맞았다.

손이 새빨개질 정도로 눈을 뭉치고 굴려 머리가 축구공만한 눈사람도 만들어 보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도 몇 개 사왔다. 아내가 애들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래. 눈고장에서 자란 나는 눈만 내리면 이렇게 마음이 들뜨고 좋다. 거리의 눈은 쉽게 녹아도 앞뜰의 눈은 그래도 며칠 갈 듯싶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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