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팬택 중앙연구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영문 글귀가 있다. ‘Faster & Better’. 경쟁업체보다 빠르고 더 나은 휴대폰을 연구,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중앙연구소를 책임지는 이정률 부사장이 직접 만든 구호에는 팬택계열의 연구개발(R&D) 전략이 모두 녹아 있다. 다른 업체와 동일한 조건과 절차를 밟아서는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에 개발 일정을 단축하면서도 우수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속도와 품질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게 팬택계열의 R&D 전략이다. 실제로 팬택계열의 이 같은 R&D 전략은 세계 시장에서 곧잘 성공을 거뒀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9월 러시아에서 선보인 ‘PG-3500’과 ‘PG-1500’ 등 ‘슬림’시리즈 휴대폰이다. 보통 외국 업체의 경우 신형 휴대폰 개발에 2년이 걸린다. 하지만 팬택은 4종류의 슬림 시리즈 휴대폰을 8개월 만에 개발했다. 기간 단축 비결은 바로 연구진의 현지 파견이었다.
유럽식(GSM) 이동통신을 사용하는 러시아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을 사용하는 국내에서 시험하며 개발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영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본고장인 영국과 미국으로 가듯 현지 개발은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팬택 연구진 40명은 러시아 시장개척용 제품개발이 결정된 그날로 짐을 꾸려 러시아로 떠났다. 현장에서 러시아인들의 휴대폰 사용 습관과 유통중인 휴대폰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한 제품을 내놓았다. 시장의 반응은 당연히 좋았다.
이런 방식으로 중국에도 수 차례 연구팀이 파견돼 현지에 적합한 휴대폰을 개발했다. 비록 외국 체제비 때문에 R&D 비용은 더 들지만 현지 시장에 적합한 모델을 출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현지 파견과 더불어 분업화한 동시 다발적인 연구개발 또한 팬택이 신제품을 빨리 선보일 수 있는 남다른 비결이다. 팬택계열에는 ㈜팬택, 팬택앤큐리텔, 최근 조직개편으로 신설된 내수총괄부문 산하에 각각 1개씩 총 3개의 중앙연구소와 디자인본부가 있다.
내수총괄부문 국내사업 중앙연구소는 국내 시장을 위한 CDMA 방식의 휴대폰을, ㈜팬택과 팬택앤큐리텔 중앙연구소는 주로 유럽과 미주 시장을 겨냥한 수출용 GSM 및 CDMA 휴대폰을 개발한다.
연구소별로 휴대폰 기능 개발에 착수하면 이들 각각의 디자인 연구소가 동시에 휴대폰 디자인에 착수하는 점이 특징이다. 기능 개발이 끝나면 바로 디자인이 적용되므로 그만큼 신제품 개발이 빠르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등 당장 제품화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동통신에 필요한 신기술은 박병엽 부회장 직속 조직으로 1일 신설된 선행연구소가 담당한다.
팬택은 박 부회장이 직접 챙기는 선행연구소를 세계 수준의 연구조직으로 키우기 위해 인력과 시설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또 아직 공석인 연구소장에 역량있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계획이다.
해외 연구소도 내년에 확충한다는 전략이다. 미국에는 50명 정도의 현지 연구인력을 채용한 CDMA 연구소가 있으나 아직까지 유럽에는 GSM 방식을 본격 연구할 거점이 없는 상태. 이를 메우고 현지 수출 물량 확대를 위해 유럽 연구소를 세우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2007년 1분기까지 서울 상암동에 지상 22층 규모의 R&D센터를 지어 계열별로 흩어져 있는 3,000명의 연구인력을 한 군데로 모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경쟁업체보다 빠르고 더 나은 제품 개발로 2007년까지 세계 5위안에 드는 휴대폰 제조사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팬택계열의 목표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 팬택 "디자인 강자"
팬택계열의 디자인본부는 상복이 많기로 유명하다.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이 각각 운영중인 디자인본부는 휴대폰 디자인만 전담하는 곳이다.
특히 팬택앤큐리텔의 디자인본부는 지난주 열린 제 7회 산업디자인 진흥대회에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기능을 지닌 ‘PT-K1600’ 휴대폰으로 대통령상인 대한민국 디자인대상을 수상하는 등 올해 15개의 디자인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기능이 약간 뒤쳐져도 디자인이 뛰어나면 제품을 선택하는 휴대폰 이용자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디자인 경쟁력은 곧 제품 및 회사 경쟁력으로 연결된다. 팬택계열은 이를 잘 알기에 디자인본부에 남다른 투자를 하고 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팬택앤큐리텔 디자인본부에는 모두 90여명의 인력이 디자인개발에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2000년 출범 당시 13명이었으나 5년 만에 연구원수가 7배 가량 늘었다. 이곳에는 독일이 주최하는 세계적인 디자인상 아이에프(iF)와 레드닷에서 수상한 디자이너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디자인본부는 전문 분업화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점이 특징이다. 내수용 및 수출용 디자인팀이 나뉘어 있으며 각 팀별로 색상, 소재, 사용자 인터페이스(UI), 패키지 등 분야별 디자이너가 구분돼 있다. 이 같은 전문 분업화를 통해 45일 동안 하나의 휴대폰 디자인을 뽑아낸다.
뿐만 아니라 참신한 아이디어와 톡톡 튀는 디자인을 얻기 위해 디자이너 커뮤니티를 별도로 설치했다. 지난해 만든 디자이너 커뮤니티는 순전히 대학생으로만 구성돼 있다.
전국 대학에서 선발된 이들은 3명이 1조가 돼 휴대폰 디자인을 개발, 연간 2회 발표한다. 교수와 디자인본부 소속 디자이너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이들의 작품 활동을 도와주는 덕분에 대학생들이 개발한 휴대폰 디자인은 바로 제품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처럼 팬택계열은 2개의 디자인본부와 외부의 디자인 커뮤니티를 통해 독특한 휴대폰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은 내년에도 디자인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디자인본부의 역량을 강화해 앞서가는 휴대폰 디자인 개발에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최연진기자
■ 팬택 이정률 중앙연구소장
“내년에는 전자태그(RFID)폰을 새롭게 선보일 것입니다.”
㈜팬택 중앙연구소 이정률(54) 소장(부사장)이 요즘 개발에 몰두하는 것은 RFID폰이다. RFID폰이란 각종 제품에 부착된 RFID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입력기가 부착된 휴대폰을 말한다.
예컨대 의약품 케이스에 붙어 있는 RFID에 휴대폰을 갖다대면 성분, 용법, 제조사 등 관련 정보가 휴대폰 액정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이 부사장은 “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에서 휴대폰용 RFID칩을 연구하는 중”이라며 “연말까지 칩 개발이 끝나면 내년에 내수 및 수출을 겨냥한 휴대폰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ETRI와 제품 개발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사장은 RFID폰 시장이 성숙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의 요구를 배제한 채 기술 위주로 시장을 이해하면 실패한다”며 수신전용 휴대폰인 시티폰과 디지털종합통신망(ISDN)을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들었다. 시장이 요구하지 않는데 무조건 기술로만 밀어붙이면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부사장은 휴대인터넷(와이브로)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그는 “과연 계속 움직이면서 인터넷을 써야 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 지 생각해보면 와이브로에 대한 답이 나온다”며 “DMB도 계속 보게 하는 콘텐트가 부족한 것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사장은 내년에는 ‘혁신을 통한 강한 중앙연구소로의 도약’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시장의 요구를 빨리 파악해 선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제품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시장 이해를 바탕으로 연구개발도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그는 “내년에도 작고 얇으며 깔끔한 디자인의 휴대폰이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 것”이라며 “특히 해외시장은 밀어올리는 슬라이드 방식과 숫자판이 노출된 막대형(바타입)이 공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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