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나 사회에서 존경받던 교수가 요즘 세상에서는 ‘동네북’이 됐다. 학생들도 걸핏하면 교수에게 대들거나 뒤에서 욕한다. 이른바 ‘교수 때리기’가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됐다. 그래서 휴강이 잦다, 정치교수다, 연구업적이 뒤떨어진다, 연구비를 횡령한다, 여학생을 성희롱한다 등 교수를 향한 비난의 행진은 멈춤이 없다.
한편 관계당국도 교수가 못 미더워서 대학 입시부터 간섭하고 지원자금으로 교수와 대학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또한 동료 교수들끼리 손가락질하기도 하고, 교수가 대학 총장이 되어도 교수집단을 압박하는데 앞장서게 된다.
오늘날 이렇게 우리 사회가 교수를 우습게 알고 교수의 명예와 권위가 땅에 떨어진 까닭은 무엇인가? 그 이유로서 대학을 압박하는 사회구조적 측면도 있지만, 우선 교수들의 잘못된 처신이 야기한 자업자득이란 측면이 더 크다. ‘학교에 하루밖에 안 나오는 교수도 있다’는 서울대 총장의 발언은 비단 그 대학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지문인식기로 교수의 출퇴근을 체크하자는 말도 나온다. 그리고 차기 대권 유력 후보의 사무실에 찾아 온 교수들의 명함이 수백 장 쌓인다고 한다. 정치교수들의 ‘줄 서기’도 어제오늘의 대학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 줄서기 등 자업자득
다행히 이제 잦은 휴강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실시하는 강의평가제에 의해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린 상태이다. 교수의 연구업적에도 엄격한 평가제가 도입되어 승진에 탈락하는 교수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교수의 정치 참여로 학생의 수업권과 대학의 연구 분위기가 침해받는 것에 대한 대책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교수의 정치 참여는 사회 기여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 교수들이 정치에 참여하여 정치발전에 기여한 점이 있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권력을 비판하면서 권력을 향한 욕망만 키워 온 것은 아닌가. 왜 그렇게 한결같이 정치권에 들어가기만 하면 말이 달라지고 뻔뻔해지는가. 교수란 직업은 자유로운 학문활동이 보장되지만 그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지식만 많이 쌓았다고 해서 학자가 되고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학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주시하며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자다. 약 2백 년 전 베를린대학 초대 총장을 지낸 철학자 피히테는 ‘자기반성의 숙련성’에 의해 학자의 사회적 신분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학자의 철저한 자기반성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다. 요즘 황우석 박사의 세계적인 연구 업적에서 난자채취 과정의 윤리적 문제도 학자로서의 엄격한 자기반성과 관련된 일이다.
그런데 정치란 학문의 세계와 달리 자기반성보다는 상대방과 대립하고 타협이 우선시 되는 세계이다. 둘 중 어느 세계가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일지는 개인이 판단하고 선택할 문제이다. 다만 명심해야 점은 교수직이 매우 자율적인 직업이지만 학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당위론적 직업의식이 요구되는 직업이란 것이다.
●철저한 자기 반성 요구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비난받고, 다른 직업처럼 각종 평가제와 권력, 돈 등 타율적 힘에 통제를 받게 된 이유는 교수가 직업의식에 의한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고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교수에 대한 사회적 존경심과 교수의 권위가 사라졌다.
그리고 교수는 지식노동자로 취급받고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교수들이 더욱 자주 정치판에 기웃거리거나 교수 노조의 합법화를 주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교수 불신의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신분 상실의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현택수 고려대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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