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가련한 한 초능력자가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타고난, 하지만 이제 그 능력을 상실해가는 중년의 ‘셀리그’다. 그가 가련한 것은 초능력자로 태어났기 때문일까, 그 능력을 상실해가기 때문일까. 그의 초능력은 ‘카인의 표식’일까 ‘신의 선물’일까. 미국 SF문학의 거장인 작가는 다분히 고전적인 이 물음에 새롭게 질문을 던진다.
“기차의 대여섯 개 차량에 빼곡히 실려 북쪽에서부터 내 쪽으로 돌진해 들어오는 밀집된 마음들의 폭발적인 충격을 포착한다. 이런 승객들의 압착된 영혼은 미완의 덩어리로 엉겨붙어 나를 압박한다.”(10쪽)
일상의 사람들이 나누는 여리고 무기력한 소통의 신호들, 언어와 표정과 몸짓들을 넘어 마음 깊은 곳으로 곧장 다가서는 능력은 그를 외롭고 차가운 존재로 내몬다.
그 능력을 이용해 여자를 후리고 대학생 리포트를 대필해주며 생계를 잇지만, 원치 않는 타인의 속내를 인지하는 것도, 그 정신적 관음행위가 주는 자책감도 고통스럽다. “난 사회의 가장 추한 두꺼비, 엿듣는 자, 관음증 환자로 비난 받아 마땅했다. 옛 영국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구멍으로 엿보는 자는 결국 자신을 괴롭힐 것을 보게 될 것이다.”(28쪽)
차츰 초능력이 약해지면서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독심(讀心)으로 세상과 아슬아슬하게 소통하며 인류의 대열에 합류했던 그는 이제 장님처럼 고독하게 세상을 대면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은 이제 내게 닫혀 있고, 그들은 꿰뚫을 수 없는 얼음으로 된 방패를 든 채 내 곁을 지난다.”(326쪽)
그가 초능력자임을 알아챈 순간 그를 버리고 떠났던 두 여인에 대한 추억, 끝까지 곁을 주며 그를 동정하고 그를 감싸 안는 여동생의 애정 등이 얽히며 소설은 따뜻한 결말로 치닫는다.
“나는 삶이 좀더 평화로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침묵이 나의 모국어가 될 것이다.”(342쪽) 그의 침묵은 의지적 소통의 차단이 아닌, 속으로 넓어지는 침묵이기에 따뜻하다. “모든 소리는 침묵으로 끝나지만, 침묵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새뮤얼 밀러 해그먼의 시 ‘침묵’ㆍ331쪽)
프루스트며 제임스 조이스, 카프카를 인용하거나 패러디하며 이어가는 문장의 운용도 감칠맛을 선사한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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