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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대인을 파괴한 광기의 역사에 절규하다 '프랑스 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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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대인을 파괴한 광기의 역사에 절규하다 '프랑스 조곡'

입력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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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편의 장중한 유서(遺書)처럼 읽어야 한다. 집단의 광기와 폭력에 질식해 간 한 여성 작가가, 생의 마지막 호흡으로, 신음처럼 토해놓은 역사에 대한 항소이유서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그 내면의 자유에 대한 절절한 연서(戀書)처럼 읽어야 한다. 유대계 우크라이나인으로 프랑스에서 글을 썼고, 제3제국의 가스실에서 숨져간 작가. 이 작품은 그의 생애 마지막 2년 동안 쓰여졌고, 사후 62년 만인 2004년 출간됐다.

어떤 작품을 그 작가의 삶을 통해 해석하는,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시도에 예외가 허용된다면, 이 작품은 마땅히 그 대상이 될 만하다. 두 아이의 엄마였던 이 유대계 작가는 예고된 죽음의 표식인 노란 ‘다윗의 별’을 가슴에 달고 이 작품을 썼다. 나치 치하의 프랑스 비시정부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는 자격마저 박탈했다.

그는 42년 7월 프랑스 헌병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한 달여 뒤 살해됐다. 이 작품은 삶과 문학에의 전망을 철저히 차단당한 한 작가의 인간과 역사에 대한 실낱 같은 희망의 호소다.

소설은 1940년 6월 파리가 함락되기 직전, 공포의 공황상태에 빠진 시민들의 피란 상황을 담은 1부와, 독일군에 의해 점령당한 한 시골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단 논리에 상충하는 개인의 논리를 이야기한 2부로 구성돼있다.

1부의 파리 시민들은 “공기를 통해, 고요를 통해 불안을 호흡”(65쪽)한다. 그 불안과 생존에의 압박 속에 벗겨져가는 온갖 가면들과 인간성의 이면들이 기록물처럼 세밀하고 냉정하게 그려진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불안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이라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투지도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슬픔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짐승, 그물 속에 갇혀 어부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는 물고기의 눈에 배어 있는 것과 같은.”(82쪽) “삶이란 셰익스피어적인 것, 장엄하고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 좋을 대로 삶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한 세계가 무너져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122쪽)

나치 점령군은 하지만, 그들이 지레 겁먹었듯 뿔 달린 괴수만은 아니다. 그들 역시 한 어머니의 어린 아들이고, 한 여자의 연인이자 남편이었다.

남편과 아들과 연인을 전장터로 떠나보내고 홀로 된 프랑스의 여인들에게 그들은 점령군이기 이전에 건장한 남자였고 곧 또 다른 죽음의 전장터로 동원돼야 할 아들 같은 전사였다. “내가 지금 여기서 보는 젊은 청년과 내일의 전사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놓여 있어.

인간 존재가 복잡다단하고, 분열되어있으며, 뜻밖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전쟁 같은 대변란이 필요해.”(474쪽)

하지만 그들의 사랑(혹은 우정)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집단 윤리에의 일탈이고 부도덕한 배신이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의 내면이 외치는 절규- 난 자유롭고 싶어. …무리와 상관없이 내 진로를 스스로 선택해 나아가는 내적인 자유…내가 증오하는 건 사람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해대는 바로 그 공동체 정신이야.… 최소한 내 운명을 판단할 권리, 그것을 조롱하고 그것에 맞서고 가능하다면 그것으로부터 달아날 권리는 나에게 남겨주길(423쪽)-는 외롭다.

책은 작가의 간략한 일대기와 이 작품 집필 과정을 소개한 서문, 당대의 프랑스 현실과 소설 구상에 대한 작가의 메모 및 편지를 모은 부록을 달고 있다.

유대인을 향해 육박해오는 나치의 총구, 그 죽음에의 예감 앞에 “작품에 대한 열성은 부족하지 않지만 목표는 멀고 시간은 짧”다며 절규하는 작가의 영혼, 하지만 “이것은 지금 당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제할 필요가 없다. 쓰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써야 한다”는 각오, 언젠가 전쟁은 끝날 것이고 그 상처가 잊히더라도 10년 뒤 100년 뒤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다짐…, 작가의 메모는 소설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수전 손택은 발트 벤야민의 삶과 저술을 평가한 어떤 글에서 “현대 작가의 윤리적 책무는 창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 본질,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위안적 개념에 대한 파괴자가 되는 것”(‘우울한 열정’, 시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난 해 프랑스 문단은 자신들의 과거(혹은 현재)의 치부를 새삼, 아프게 들여다보게 한 이 작품에, 생존작가에게만 수여하던 관행을 깨고 ‘르노도상’을 헌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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