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헌법에 규정된 새해 예산안 처리시한을 또다시 지키지 못했다. 1990년 이후 15년 동안 예산안이 법정 처리시한 내에 처리된 것은 고작 여섯 번이니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법 규정을 지키지 않고도 여야가 의례적인 유감표명에 그칠 뿐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은 기가 찬다.
새해 예산안 처리시한을 법으로 정한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의원들의 무신경과 위법 불감증이 놀랍다. 법정시한을 넘기고도 여야는 원안 통과와 대폭 삭감을 고집하며 기세싸움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정기국회 폐회일인 9일까지도 예산처리를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번 예산심의 과정에서는 부실ㆍ졸속 심사의 구태도 고스란히 재연됐다. 각 상임위 단계에서 정부 부처의 예산안 중 낭비요인이 있거나 불요불급한 항목을 가려내 삭감한 실적은 미미하다. 오히려 건교부 예산심의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역의 선심ㆍ민원성 예산을 덧붙여 9,000억원을 늘리는 등 각 상임위가 덧붙인 예산이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예결특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또 한번 거른다고는 하나 인력과 시간이 딸리는 예산안조정소위가 삭감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에 예산안조정소위에 참여한 민노당이 선심성이나 민원성 예산을 찾아내 삭감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니 기대가 된다.
한푼도 깎을 수 없다는 여당의 자세는 납득하기 어렵다. 방만한 예산에 대한 지적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갖은 이유를 들어 원안 통과를 고집하는 것을 이해할 국민은 없다.
정부예산안에서 9조원을 삭감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의지는 가상하다. 그러나 삭감 목표액이 철저한 분석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는 깎아야겠다는 식의 총량적인 접근으로 보여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예산안과 다른 사안을 연계하는 구태가 엿보이는 것도 우려스럽다. 여야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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