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모자란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의 재고현황판이 대부분 빨갛게 도배돼 있다.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헌혈이 급감하고 있다. 잇따른 수혈사고로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진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거리에서 헌혈을 권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 같지 않다.
무시를 당하고 짜증을 받으면서도 10년 넘게 헌혈권유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일엔 적십자 직원들이, 주말엔 이들 자원봉사자들이 거리에 나선다. 지난 토요일 중앙헌혈적십자봉사회 회원들과 함께 헌혈권유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아바타몰 앞 번화가.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연인끼리 친구끼리 종종걸음으로 오가는 인파 속에서, 봉사회원들이 전단지를 나눠준다.
“예쁜 아가씨들! 헌혈하고 가세요.”
중앙헌혈적십자봉사회 김의용(58) 회장이 재잘대며 지나가는 젊은 여성들에게 곰살궂게 말을 건넨다.
“저 감기약 먹어서 안돼요.”
아가씨들이 나이 지긋한 어른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둘러대자 김 회장이 잽싸게 되받는다. “12시간 지나면 괜찮아요. 놀러 나온 것 보니까 다 나은 것 같구먼. 오늘 헌혈하시면 영화티켓도 드려요. 기분 좋게 헌혈하시고 영화도 보고 가세요.”
머뭇거리던 아가씨들은 김 회장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헌혈 버스에 올랐다.
이렇게 김 회장처럼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기는 쉽지 않다. 기자와 다른 봉사회원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며 헌혈을 권유하자, 이들은 힐끗 쳐다보더니 대꾸도 않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길을 걷다가 전단지를 건네려 하면 갑자기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푹 숙이기가 다반사다.
안타까운 마음에 쇼핑 나온 듯한 아주머니에게 참여를 권하느라 팔을 붙잡았다. “왜 이래요”하며 버럭 화를 내고 가버린다. 김 회장이 다가와 “사람들을 절대로 붙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권유는 하되 강요는 않는다는 것이 그가 체득한 철칙이라고 했다.
“저도 헌혈할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을 상대로 헌혈을 권유하고 있는데 한 50대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처녀 때부터 헌혈을 하고 싶었지만 몸이 약해 못했는데, 요즘 나아져서 마음먹고 왔다고 했다. 그의 몸무게는 49kg, 난생 처음 남을 위해 헌혈을 했다며 기뻐했다.
오후 4시. 겨우 반나절 정도 서 있었는데 다리가 아프다. 봉사회원들의 표정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쌀쌀한 날씨와 도심의 소음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지치게 만드는 것 같다. 헌혈상황을 점검하는 적십자사 중앙혈액원 남충희 대리의 표정도 밝지 않다.
남 대리는 “2003년 253만명이던 헌혈자 수가 작년에 232만명으로 줄어든 데 이어, 올해는 11월 말까지 190여만명에 그쳤다”며 “현재 적혈구 재고량은 적정량의 14% 수준으로 B형을 제외하곤 하루치도 안 된다”고 말했다.
문득 그들이 헌혈권유 봉사를 하는 까닭이 궁금했다. 한국전쟁 때 수혈을 받아 목숨을 건진 것을 갚기 위해 자원했다는 70대 회원부터, 젊은 시절 매혈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봉사를 하게 만들었다는 40대 회원까지 다양했다.
“보약 먹여 놨더니 걸핏하면 헌혈이나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 일까지 한다고 애 엄마한테 욕도 많이 먹었죠.” 봉사회 박희대(56)씨는 가족의 눈총까지 받으며 봉사를 하는 이유를 묻자 “피가 필요한 사람은 많은데 나 자신은 한 달에 두 번 밖에 헌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127차례 헌혈을 했다.
오후 5시. 헌혈이 마감되는 시간이다. 봉사회원들은 시간을 넘기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헌혈에 참여 시키려 애를 쓴다. 마지막 채혈이 끝나자 간호사가 “49명”이라고 했다. 헌혈자 수가 다른 날보다 20명 정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글쎄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토요일에 집에서 노느니 젊은 사람들도 구경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김 회장이 “허허” 웃었다. 그가 입고 있는 노란색 자원봉사자 조끼에 헌혈 200회를 증명하는 조그만 배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큼직한 사랑의 훈장이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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