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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60개 키워드로 여는 동양철학 '21세기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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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60개 키워드로 여는 동양철학 '21세기의 동양철학'

입력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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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를 믿는 동아시아지역에서 ‘반야심경’은 불교 사상의 정수를 요약한 중요한 경전이다. 이 경전에 담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현상세계가 공과 다르지 않’다는 인식론의 관점은 물론, ‘사물을 볼 때 차별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는 인식의 전환을 통해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실천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존재 앞에 높인 죽음과 치열’하게 만나 사상을 형성해 간 장자의 ‘물화’(物化)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여 그 이치를 즐기고, 또 초연하는 것이다.

삶에 기뻐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것들을 담담히 자연의 이법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죽음에 구속 당하는 일이 없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고령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뇌사나 식물인간, 안락사 등의 문제가 부닥칠 때 장자의 생사관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과시용으로 동양철학서를 뒤적이던 사람이 다수였지만, 지금의 동양학 연구는 매우 현실적이다.

생명윤리, 환경파괴, 생명복제 등 기술문명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갖은 사회윤리적 딜레마들의 해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럴싸한 답을 굳이 동양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물론 아니겠으나, 동양학을 배우면서 매우 새로운(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각에 새삼 눈 뜨는 것은 사실이다.

60가지 키워드로 동양철학의 중요한 주제들과 우리 사회의 쟁점들을 연관지어 설명한 ‘21세기의 동양철학’은 이런 동양학 공부를 위한 실용적인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1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서는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동양철학의 주요 개념과 용어를 살폈고, 제2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현재 쟁점인 사상과 문화를 동양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공’에서 시작해 ‘기’(氣) ‘리’(理) ‘명’(名) ‘무위’(無爲) ‘선’(善) ‘심’(心) ‘인’(仁) ‘중용’(中庸) ‘자연’(自然) ‘윤회’(輪廻) 등의 어원과 중요한 출전, 대표적 용례, 시대별 의미 전개, 학파별 의미 차이가 드러나고, ‘개혁’ ‘공동체’ ‘다원주의’ ‘동아시아’ ‘디지털’ ‘생명윤리’ ‘생태’ ‘소통’ ‘인간복제’ ‘자유’ ‘죽음’ ‘테크놀로지’ ‘지식인’ 등 움직이는 개념들이 현재의 맥락에서 설명된다.

체제는 대동소이하나 키워드 60개를 해당 학자들이 모두 따로 썼기 때문에 글 맛은 제 각각이다. 그 가운데서도 ‘도’(道)를 설명하는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글은 별나게 재미있다. 노장과 유가, 법가, 또 사마천을 거론하며 ‘도’의 의미를 짚어본 뒤 그는 ‘지금 어느 도를 쓸 것인가’고 묻고는 답한다.

‘유학에서는 인격의 이상은 살리되 변화된 시대의 지식과 사회관계를 고려하고, 법가는 제도와 규율에 대한 현실감각을 살리되, 공공의 선과 시민들의 복리라는 최종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하고, 노장에게서는 인간존재의 우주적 의미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배우되, 그것을 사회정치적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한 교수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천만 영원하지 않고 임시적, 선택적’이라고 설파한다.

최진석(서강대) 신정근(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이 책을 엮은 이동철 용인대 교수는 “사회 여러 분야에서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동양철학의 기본적인 용어, 개념, 쟁점과 분야에 대한 공동의 이해와 언어가 성립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며 “21세기의 한국이라는 관점에서 동양철학을 살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을유문화사가 창사 60주년을 기념해서 낸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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