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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美에 취했던 두 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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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조선의 美에 취했던 두 日人

입력
2005.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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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4월4일, 조선총독부 산하 임업 시험장 관리로 일하던 한 일본인의 죽음 앞에서 조선인들은 통곡했다. 청량리에서 이문동 공동묘지까지 향하는 장례 행렬에서 상여꾼을 자청하는 사람들만도 수십 명에 달했다.

조선인들에게 그토록 사랑을 받은 일본인은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일찌감치 눈을 뜬 민예 연구가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였다. 한복 바지저고리를 즐겨 입고 수염을 기르고 한국 담뱃대를 사용했던 그는 급성 폐렴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 “나는 죽어도 조선에 있을 것이오. 조선식으로 장례를 지내주시오”라고 유언 했다.

자신의 서재에 다쿠미의 사진을 걸어 놓고 늘 그를 숭모했던 이도 있었다. 광화문 철거 반대를 주장한 ‘아아, 광화문’이란 글로 유명한 일본의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는 다쿠미로부터 감화를 받아 조선 문화에 경도됐다. 이후 다쿠미와 함께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우고 ‘조선과 그 예술’ 등의 숱한 저서를 남긴 그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비애의 미’로 규정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게 일본에는 욘사마에 열광하는 중년 여성이 출현하기 이미 70~80여 년 전 조선의 미에 빠져든 두 사람, 아사카와 다쿠미와 야나기 무네요시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평전이 동시에 번역 출간된 점은 뜻 깊다.

다카사키 소지 쓰다주쿠 대학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한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에게 낯선 다쿠미의 일대기를 쉽게 풀어낸다. 농업과 염색업을 가업으로 삼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다쿠미는 조선 도자기 수집가로 명성을 떨친 형 노리타카의 영향을 받아 백자의 매력에 취한다. 이후 조선의 전통 공예품과 도자기를 수집하고 연구한 십 수년 간의 성과를 모아 ‘조선의 소반’ ‘조선도자명고’(사후 출간)을 펴냈다.

‘조선도자명고’의 한 대목에서 다쿠미의 조선관을 살펴 볼 수 있다. ‘옛날 조선에는 각 시대마다 전 세계에 독보적이라고 내세울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도자기가 있었다. (중략) 훌륭한 도자기는 그것이 제작된 시대가 훌륭했음을 증명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의 역사를 ‘비참한 역사’로 파악하고 ‘비애의 미’ 이론을 전개한 야나기 무네요시와 달리 우리 민족의 융성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 타쿠미의 열정이 느껴진다.

1945년 해방 이후 형인 노리타카가 한국인 김성진씨 손에 넘겨준 다쿠미의 일기장에서 그의 한국 사랑은 한발 더 나아간다. ‘고려의 군악은 민족 분기(噴氣)의 곡이 되어라. 잔치하며, 춤추는 노래를 민족이 다 함께 연주하는 평화의 날이여 와라.’ (1922년 11월8일)

세이센 여자대학교 문학부 문화사학과 나카미 마리 교수의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은 90년대 들어 한국에서 식민주의적 미학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무네요시를 위한 옹호론. 저자는 무정부주의와 동양적 정신에 심취한 무네요시를 ‘근대 서양을 모방하려 하는 일본 군국주의 정치권력을 비판하며 문화 다원적인 국제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했던 사상가이자 실천가’로 규정한다.

또 식민주의적 미학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야나기는 한국인의 주체적 능력에 신뢰를 보냈다”고 논박한다. 야나기의 핵심 사상은 ‘비애의 미’가 아닌 아시아 여러 민족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복합의 미’였다는 것.

식민지 체제 아래서 일본인으로써 한국 문화의 황홀경에 빠져들었던 다쿠미와 야나기. 그들의 시각에 대한 두 나라 국민의 올바른 이해와 수용이 21세기 새로운 한일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사카와 다쿠미 평전

다카사키 소지 지음ㆍ김순희 옮김 / 효형출판 발행ㆍ1만7,000원

▲야나기 무네요시 평전

나카미 마리 지음ㆍ김순희 옮김 / 효형출판 발행ㆍ1만8,000원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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