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전쟁의 제왕(lord of war)’이라는 영화는 무기 밀매상이 돼 큰 돈을 벌어 들이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휴양지의 최고급 호텔을 통째로 빌리고, 여행은 전용 제트 비행기로 오가는 이 남자는 집에서 유난히 샴페인을 많이 마시는 것이 눈에 띈다.
부엌에는 늘 차가운 아이스 버킷에 담긴 샴페인 한 병이 있고, 거실 탁자 위에도, 전용 비행기 안에도 언제나 샴페인이 대기 중이다. 이렇게 샴페인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황을 대변하는 액세서리로 자주 이용된다. 그러나 과연 샴페인의 매력이 그것뿐일까? 명품 드레스나 보석처럼 ‘과시’를 위한 상징적인 수단일 뿐일까?
프랑스의 샴페인 지방에서만 한정적으로 생산되는 발포성 와인이 바로 샴페인. 그 희소성으로 인해 자연 가격대가 높을 수밖에 없게 되니 그로 인해 엄연히 ‘와인’으로 대접 받아야 할 샴페인이 ‘맛’이라는 측면에서는 간과되고 있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의문이다.
최고급 와인 브랜드중 하나인 돔 페리뇽사(社)의 조리장 베르나르 당스(Bernard Dance)씨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박 재은(이하 박): 돔 페리뇽 사가 주최하는 갈라 디너를 위해 내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간을 내주어 고맙다. 우선 당신의 샴페인 조언을 듣기 전에 셰프로서의 성장 과정을 간략히 말해 달라.
△베르나르 당스(이하 당): 나는 2차 대전이 끝난 프랑스에서 9남매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고향은 론 밸리의 작은 마을로 우체국에서 일하신 아버지와 9남매 때문에 정신이 없던 엄마 사이에서 자랐다. 전후라서 시대가 어수선했고, 살림도 넉넉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늘 무언가를 요리해 주시려 애를 쓰셨다. 그녀가 만들어 내는 반죽 등을 지켜보던 내게 요리는 온 가족을 기쁘게 하는 마술 그 자체였다.
-박: 나이 스물 일곱에 이미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는 레스토랑에 입성을 하게 되었다는데 정말 대단한 실력인 것 같다.
△당: 실력도 실력이지만 ‘요리사는 맛의 경험이 풍부해야 한다.’는 나의 오픈 마인드가 파리의, 칸느의 일류 레스토랑으로 선뜻 전전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돔 페리뇽 측에서 자사의 샴페인 홍보를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셰프가 필요하다는 조건에 응할 수 있었던 것도, 또 결국 그것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도(그 와중에 와이프를 만났으므로) 내 용기와 정열 덕이라고 자부한다.
-박: 샴페인을 논하기 전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바로 프랑스 퀴진이라고 보는데, 간략히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당: 프랑스 음식은 흔히들 부담스럽고 사치스러운 장르의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프랑스 요리는 다만 재료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을 뿐, 계절이나 지방에 따른 스타일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서울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선보이는 프랑스 요리는 주로 파리를 중심으로 한 내륙 지방의 부르주아 식단인데, 실제로 해안 지방이나 접경지방 등을 보면 소박하고 가벼운 요리가 주를 이룬다. 한국 음식도 한정식과 백반집의 식단이 다르지 않는가?
-박: 그렇게 비교를 할 수 있다니, 한식도 먹어 본 모양이다. 외국인들은 한식이 맵고 짜다고들 하는데, 당신은 어떤 요리가 특히 좋았나? 샴페인과 매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 내가 선호하는 한국 음식은 서울 스타일의 궁중 요리다. 맵고 짠 자극이 아니라 은은한 맛과 향, 그리고 우아한 담음새로 승부하는 그것 말이다. 특히 너비아니 구이는 양념이 간간하면서도 육질이 입에 붙도록 맛이 좋아서 맛이 탄탄한 샴페인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박: 이번 갈라 디너의 목적이 한국와 프랑스의 문화 교류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샴페인 디너를 위한 당신의 메뉴는 지극히 프랑스적인가?
△당: 그렇다. 나는 연도별로 준비 된 돔 페리뇽 샴페인과 가장 조화로운 맛을 낼 식재료들로 가장 프랑스적인 요리들로 메뉴를 짰다. 특히 샴페인은 그 미세한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것을 해치지 않도록 요리의 농도 조절에 애를 썼다.
-박: 메뉴를 보니 어린 빈티지의 샴페인으로 시작하여 점점 숙성된 빈티지의 샴페인으로 옮겨가더라. 음식의 흐름도 그렇다는 말인가?
△당: 샴페인을 마시는 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샴페인을 농도가 맞지 않는 음식에 매치하는 것이다. 샴페인이 비교적 고가라는 특성 때문에 괴사용이나 선물용, 축하용으로 잔에 따를 뿐, 이 멋진 와인을 어떻게 마셔야 제 맛을 내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샴페인 음미하는 방법을 내 요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이다.
풀밭을 짓이긴 듯 신선한 올리브 오일로 얇은 생 바다가재를 감싼 맛이 숙성도가 어린 샴페인과 준비되고, 느끼하고 고소한 맛의 송로 버섯으로 만든 젤리가 15년이나 묵은 샴페인에 매치되는 식으로. 또, 육즙이 풍부한 고기는 피노누아라는 적포도가 많이 섞인 돔 페리뇽 ?适─??곁들여 그 밸런스를 조정한다.
-박: 모든 이들이 당신의 요리를 맛 볼 수는 없으니, 가정에서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레써피를 달라. 당신이 집에서 쉬는 날 뚝딱 만들어 내는 그런 안주 말이다.
△당: 페스츄리 반죽이나 제과점 페스츄리를 한 입 크기로 자른 다음 그 위에 파르마잔 치즈를 갈아 올려서 오븐에 구워내면 초 간단 까나페가 된다.
당스 셰프는 거창한 요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샴페인을 마심으로써 반짝 빛나게 되는 순간의 기쁨이 최고라 했다.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좋은 사람과 좋은 순간에 나눠 마시면서 그 기쁨을 음미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샴페인에 관한 나의 궁금증은 인생에 관한 넓은 해답으로 풀려버렸고.
푸드 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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