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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달력을 주고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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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달력을 주고받으며

입력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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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가자면 아직 한 달이 남았지만, 새해에 대한 기대처럼 매년 이맘때쯤이면 달력을 주고받는다. 똑 같은 달력이라도 미리 주면 일부러 챙겨주는 것 같아 고맙고, 연말쯤에 주면 왠지 남아도니 주는 것 같고, 해가 바뀐 다음에 주면 처치곤란이어서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 어릴 때 세계 명화 시리즈처럼 그림 좋은 달력은 주로 은행에서 만들어 돌렸다. 이런 달력은 우리들 방에 걸렸다. 영화배우들의 모습이 실린 달력은 고모들 방에 걸리거나 아니면 가위로 오려져 벽에 붙여졌다.

안방엔 네모 칸 안에 숫자만 큼지막하게 쓴 시내의 ‘상회달력’이 걸려 있었다. 거기엔 그날그날의 음력 날짜와 일진까지 나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네모 칸 안의 빈 공간에 그날의 어떤 특별한 일들을 적어두었다.

집안의 제사와 친척의 혼삿날을 미리 적어두기도 하고, 자식 중 누가 학교로 공납금을 가져간 날이면 ‘누구 얼마’ 하고 이름과 금액을 적기도 했다. 또 거기엔 모내기를 한 날, 비료와 사료가 들어온 날, 그리고 외양간에 매어져 있는 암소가 인공수정으로 새끼를 밴 날까지 적혀 있었다. 달력이 한 집안의 가계부이며, 농사일지이기도 했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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