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의 발표에 따르면, 성인 남녀의 82.1%가 ‘사회지도층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지도층 인사’는 국민의 기본 의무는 물론 도덕적 의무도 실천하지 않고, 그들의 부패에 대한 처벌도 죄질에 비해 관대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조사에서 누구를 ‘사회지도층’으로 상정한 것일까? 사회 원로인가? 교직자인가? 성직자인가? 대통령을 포함한 공직자인가? 판사나 변호사인가? 기업 경영자인가? 가진 자인가? 노동조합 간부인가? 인체 줄기세포를 연구한다면서 관련 윤리 원칙의 기본 중의 기본(헬싱키 선언)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공언하는 연구자인가? 이른바 ‘피피새치’(병역의무 회피, 납세의무 회피, 철새, 파렴치범) 정치인인가?
무엇보다도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불신 당하는 자가 사회지도층일 수 있나? 이런 여론조사를 한 이유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총체적 불신사회임을 입증하기 위한 것인가? 냉소주의를 조장할 목적이 아니었다면, 우리 사회에 지도층이란 계층이 따로 존재하는지부터 묻고자 한다. 민주사회에서 도대체 누가 누구를 지도한다는 것인가?
걸핏하면 거론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란 용어도 듣기 민망하다. 원래 서구의 중세 및 근대 계급사회에서, 귀족의 사회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전략이자 책략이었다. 근래에는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라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가 신분사회인가? 높은 신분과 낮은 신분의 계층이 구분되나?
사회계급이나 신분계층 자체가 없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굳이 적용한다면, ‘자신의 직분에 걸맞게 처신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는 있다. 교수는 교수답게, 연구자는 연구자답게,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처신하라!
위대하신 영도자나 친애하신 지도자를 받드는 사회는 선진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아직도 계급이나 계층의 분류를 일삼는 전근대적 부류가 있다. 이를테면 강남과 비강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위층과 하위층을 계층화한다. 사회의 계층화를 조장하는 ‘사회지도층’이란 용어 자체가 선진 신뢰사회로의 진보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나?
최근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4.3%가 스스로 법을 지킨다고 한다. 4년 전에 비해 6.3% 포인트나 증가했다. 굳이 말하자면, 시민들이야말로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노블레스가 아닌가? 법치와 신뢰의 선진사회 선도자는 바로 진보적 시민사회다.
조영일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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