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아침 이른 출근시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청계천 모전교 인근. 진눈깨비가 차가운 바람에 실려 흩날리는 산책로에 한 중년의 사나이가 바람을 가르며 나타났다.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고 작은 배낭을 둘러맨 채 내딛는 발걸음은 나는 듯이 가볍다. 언뜻 봐서는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 같지만 사실은 출근길을 서두르는 직장인이다.
서울시 직원 진병환(49ㆍ푸른도시국 공원과)씨는 청계천이 복원된 후부터 마라톤으로 출ㆍ퇴근하는 ‘청계천 마라토너’이다. 진씨의 집은 동대문구 휘경동, 시청 사무실까지는 13㎞에 이르는 짧지 않은 거리지만 그는 1시간여만에 주파한다.
이처럼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이나 시청 주변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오다 청계천 주변 정거장에 내려서 가볍게 걷는 ‘알뜰 건강족’이 대부분이지만 진씨처럼 아예 집에서 직장까지 내달리는 ‘선수’들도 간혹 눈에 띈다.
5년 넘게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있다는 진씨는 “청계천 물길을 따라 뛰는 맛이 어디에도 비길 수 없다’고 말한다.
“단조로운 길을 뛰는 것과 돌돌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물억새와 노랑창포를 바라보며 뛰는 느낌은 천지 차이입니다. 게다가 바닥에는 콘크리트나 아스팔트가 아니라 부드러운 마사토가 깔려 있고, 곳곳에 볼거리가 널려있는 청계천은 그야말로 환상적인 마라톤 코스죠.”
매일 청계천을 뛰다 보니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시청 동료직원 뿐 아니라 인근회사 직장인들과도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산책로에는 이른 아침부터 운동화를 신고 속보로 걷는 넥타이족도 많고, 하이힐 대신 간편한 신을 신고 핸드백을 뒤로 멘 채 걷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아가씨도 있습니다. 도심 일반 거리에서 그랬다면 이상하게 쳐다봤겠지만 청계천에서는 전혀 낯설게 보이지 않죠.”
진씨는 이렇게 매일 1시간 넘게 출ㆍ퇴근주(走)를 계속하면서 체력도 좋아졌고 기록도 크게 향상됐다고 말했다. 풀코스 마라톤에서 2시간 41분의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지난달에는 100㎞를 완주하는 울트라마라톤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서울숲을 출발해 광진교, 한강시민공원 반포지구, 양화대교, 청계천 청계광장을 거쳐 다시 서울숲으로 돌아오는 그야말로 ‘죽음의 레이스’였다.
진씨의 목표는 내년 5월로 예정된 세계 24시간 달리기대회 한국대표로 선발되는 것과, 내년 10월 열리는 세계 100㎞선수권대회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그는 “지금처럼 아침저녁으로 청계천을 달리며 연습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글ㆍ사진=최진환 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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