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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제주의 겨울 - 감귤 관광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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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제주의 겨울 - 감귤 관광농원

입력
2005.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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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겨울은 화려하다. 찬란한 단풍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훨씬 강렬한 색깔이 제주의 대지를 뒤덮는다. 잿빛이어야 할 겨울 초입이 이토록 현란할 줄이야. 다름 아닌 감귤이 빚어낸 마술이다.

흔해 빠진 감귤이 뭐 그리 볼거리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렇다면 성산에서 표선을 지나 남원으로 이어지는 16번 도로를 한번 달려보자. 멀리 한라산 정상을 배경으로 야트막하게 펼쳐진 감귤 농장에 어떤 조화가 펼쳐지고 있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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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상징이 된 돌담과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삼나무 숲을 병풍 삼아 노랗다 못해 붉은 기운마저 감도는 감귤이 마중 나온다. 감귤을 토해낸 잎새들이 이에 뒤질세라 짙푸른 색깔을 뿜어댄다.

감귤 색을 기막히게 돋보이게 해 주는 보색 대비다. 돌담을 감싼 담쟁이 넝쿨 너머로 누렇게 익어 가는 감귤이 뉘엿뉘엿 기울어져 가는 오후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모습, 그야말로 숨막힘의 연속이다.

색채로만 따지자면 유채에 못 미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귤이 정녕 아름다운 이유는 겉모습에만 있지 않다. 척박한 현실에서 꿋꿋이 삶을 꾸려 온 제주 민초들의 삶과 너무도 닮아 있다. 봄이 돼서야 산하를 뒤덮는 유채가 초겨울 관광객들에게 뜬금 없이 나타나는 요즘 제주가 아니다.

얄팍한 상술은 제주의 자연미에까지 눈독을 들였다. 제주 하면 노란 유채꽃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통념에 부합, 유채꽃을 심어다 1인당 1,000원 남짓 하는 돈을 받고 풍경을 대여해 주는 그들.

제주에 감귤 농사가 시작된 것은 1,500년을 넘었지만 지금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것은 불과 40년 전이다. 먹고 살기 어렵고, 관광이라는 개념마저도 희박하던 시절,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 밀감은 제주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 단지나 다름없었다. 당시 보급된 감귤은 초겨울부터 수확이 가능한 조생귤과 늦겨울에 결실을 맺는 만생귤.

만생귤은 잎사귀가 푸르고 윤기가 났지만, 조생귤은 잎이 연약하고 겉모습도 볼품없었다. 돈 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앞다퉈 만생귤을 가져다 심었고, 빽 없는 민초들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이 보이던 조생귤을 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못생긴 종자에서 자라난 감귤을 수확해보니 당도와 색깔 등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제주에서 만생종은 찾아볼 수 없다.

거센 태풍으로 천지 만물이 쑥대밭 돼도 감귤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한이 있어도 제 품에서 난 자식은 떨구지 않는 제주 감귤이다. 너무 많은 열매가 열려 가지가 바닥까지 늘어져도 한 톨의 귤조차 포기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주 여성의 억척스러움에 곧잘 비유되기도 한다.

20년 전만 해도 감귤나무는 제주 주민에게 대학 나무로 불렸다. 한 그루만 잘 키워도 한 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결실을 맺은 까닭이다. 무, 보리를 캐내고 그들은 앞 다퉈 귤나무를 심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공급 과잉 현상이 심해져 지금은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세상은 그러나 늘 변하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대규모로 짓는 농사 현장이 곧 관광 자원으로 거듭나는 세태의 수혜자가 됐다. 21세기와 때맞춰 감귤 농장이 관광 농원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 대지를 가득 메운 오렌지색 향연은 해마다 반복된 제주의 풍광이건만, 이제 감동의 빛깔이 분명 다르다.

남제주군이 조성한 농업 생태원은 재래 농업을 관광 상품화한 대표적인 곳이다. 2만평에 가까운 감귤 체험장. 눈이 시리도록 노란 그 곳은 야외 색채 예술관이다.

500여평의 감귤 품종 전시 온실에는 한라봉, 탱자 등 전 세계 70여종의 감귤을 접할 수 있다. 홍가시나무와 애기동백으로 조성된 미로원은 감귤 체험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 어린이들의 즐거운 놀이터이다.

체험장 옆에 마련된 50m 길이의 잔디 썰매장도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공간이다. 감귤 모형을 형상화한 감귤 판매 전시관은 감귤 초콜릿, 감귤 염색 제품, 감귤 주스, 감귤 잼 등 감귤을 응용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성탄절 휴가에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린다.

23~25일까지 도전 귤 따기, 감귤잼, 주스 만들기 등 남제주군이 마련한 ‘최남단 감귤농장체험축제’가 그것. 귤따기 체험 행사는 내년 1월 8일까지 계속된다. 남제주군 농업기술센터 (064)733-5959

제주=글ㆍ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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