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은 지난 10ㆍ26 재선거 패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당 지지율 만회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평균 15%에 달하던 지지율이 10% 밑으로 떨어진 후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쌀 협상 비준동의안 처리 반대에 당력을 집중하고, 몸싸움과 단상점거도 마다 않는 높은 투쟁성을 보여주었다.
28일에는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쟁취하기 위한 천막농성에 돌입하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투쟁’들이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이 쌓이면 쌓일수록 2012년 집권이라는 민노당의 ‘꿈’은 진짜 꿈이 되고 말 것이다.
민노당이 요즘 투쟁을 통해 얻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기 위안이요, 나머지 하나는 보수세력이 덧칠하고 있는 ‘수구’좌파의 이미지이다. 민노당 지도부는 진정 길거리 농성을 통해 지금의 경제개혁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믿는가? 동지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할 만큼 했다‘라는 자기 위안을 얻을지는 모른다.
●멀어진 민노당 집권의 꿈
하지만 자기 위안의 그늘에는 생존권 위협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농민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와중에 민노당에 가졌던 희망은 하나 둘 사라져 간다. 노동자·농민들도 그러하겠지만, 대다수 중산층 (잠재)지지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민노당이라는 새 시대의 희망은 사라져만 간다.
민노당은 몸싸움과 거리투쟁 이전에, 미래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민노당의 존재이유가 농민단체와 노동조합과 같아서는 곤란하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쌀 개방과 노동법개정에 온몸으로 반대하기에 앞서, 적어도 잠재적 지지자로부터 지지를 동원해 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개혁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신자유주의 개혁 외에 대안이 없다면, 오히려 앞장서 경제개혁을 외쳐 미래 비전의 국가적 아젠다를 선점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혁의 아픔을 치유할 사회정책적 대안을 주도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는 이도 저도 아니다. 미래에 대한 어떠한 설득력 있는 비전도 구체적인 대안도 없다. 일단 반대하고 투쟁하고 보는 것이다. 민노당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겠다는 인상만 각인시키면서 말이다.
서구의 좌파 정당들은 어떻게 집권의 꿈을 이루었고, 세계화 시대에도 집권세력으로서 건재한가? 세계화에 반대하는 길거리 투쟁을 벌인 덕분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좌파 나름대로 분배정책뿐만 아니라 ‘성장전략’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다수의 지지를 동원해 내기 때문이다. 독일 사민당의 ‘아젠다 2010’과 스웨덴 집권 사민당의 ‘복지를 위한 성장’ 등은 비근한 예이다.
독일 사민당 정부는 전통적인 지지층의 이탈과 당이 쪼개져 나가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성장전략을 들고 총선에 임했다. 비록 총리직은 내놓았지만 연정의 한 축을 담당하며, 독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다시금 굳건히 지켰다.
스웨덴 사민당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복지국가의 전형이면서도, 기업 활동하기 좋은 나라, 국가경쟁력 1~2위를 다투는 스웨덴은 우파의 작품이 아니다. 지난 70년 동안 스웨덴을 지배하고 있는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업적이다.
●투쟁보다 미래 비전율
경제성장은 우파의 몫이고 분배는 좌파정당의 일이며, 세계화는 우파가 만들어낸 신화이고 반세계화는 좌파의 정의로운 사명인 양 여기는 ‘우물 안 좌파’는 아닌지, 민노당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때이다. ‘수구’좌파라는 비아냥을 가벼이 무시할 수 있는 이 시대 진정한 ‘진보’정당을 우리 정치사에도 갖기를 바란다면 지나친 바람일까?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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