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화숙 칼럼] '무농약 과자' 표시 보고 싶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화숙 칼럼] '무농약 과자' 표시 보고 싶다

입력
2005.11.30 00:00
0 0

10년전 대학교수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한 윤구병 선생과 동료들이 일군 변산공동체는 초보 농꾼들일텐데도 흑자살림을 한다고 했다. 비결을 알고 보니 농사를 잘 지어서가 아니었다. 이 공동체가 만드는 젓갈과 효소 같은 발효식품이 잘 팔려서였다.

논도 밭도 넉넉치 않은 울진에서 26년째 농사를 짓는 강문칠씨는 농촌마다 흔하다는 농가부채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7년 전 이웃들과 시작한 된장사업이 그런대로 잘 굴러가기 때문이다.

●농산물 가공업이 농가 살린다

쌀협상비준안 통과로 농민들이 죽겠다고 한다. 내년부터 수입쌀이 시장에 등장하며 10년후에는 쌀수매도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농사 가운데는 그나마 수익이 나던 쌀농사마저 이렇게 되었으니 농민들의 불안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농민들의 불안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은 그동안 농업의 활로로 여겨지던 친환경농업마저 위기에 봉착한 징후가 올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올 가을 국내 최대의 친환경농업 쌀 소비처인 한살림은 무농약 쌀 값을 떨어뜨렸다. 작년 쌀을 못 팔아 생산농가에 되돌려보내기도 했다. 친환경 농가들이 대부분 속해있는 환경농업단체연합회에 따르면 올 9월 햅쌀을 내놓기 전에 조사해보니 작년 묵은 쌀이 9,000가마나 남았다고 한다.

연합회조차 작년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팔던 무농약 쌀이 올해는 너무 많이 남아서 당황했다고 전할 정도이다. 쌀에서 어려움을 겪은 농민들이 다른 작물로 업종을 전환하면 친환경농산물 공급과잉의 문제는 전체로 번져갈 모양이다.

친환경농산물이 공급과잉을 빚게 된 것은 재배면적이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의식있는 민간단체에서 시작된 친환경농업은 제값받는 농산물을 만들자는 농림부의 직불금 지원까지 받으며 급성장했다. 그 결과 2000년에 2,000 ha이던 친환경농산물 재배지역은 2004년에는 2만8,000 ha로 늘어났다.

생산량도 2000년에 3만5,000톤이던 것이 2004년에는 46만1,000톤으로 무려 13배나 늘어났다. 그런데 소비가 이만큼 빨리 늘어주지 않으니 가격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가까이 있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더 싼 친환경농산물과의 경쟁도 불가피하다. 친환경농업 자체로는 대안이 아니게 되었다.

친환경농산물의 재고를 줄이고 농가를 살리는 방법이 있다. 가공이다. 실제로 현재 농촌에서 소득을 낼 수 있는 것도 변산공동체나 강문칠씨처럼 가공산업을 통해서이다.

문제는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가공산업에 격차가 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친환경농산물은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유기재배 ▦유기농, 이렇게 4단계로 구분하고 있으나 농산물가공식품은 유기농만이 따로 표시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무농약 식품으로 가공식품을 만들어도 친환경농산물을 원료로 했다는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

식품가공품을 다루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국제표준이 유기농산물에 대한 표시만을 다루도록 하고 있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식품가공품 원료 표기 세분화돼야

그러나 이것은 현실을 도외시한 발상이다. 고온다습한 풍토 때문에 농가에서 농약과 제초제를 많이 쓰고 있는 한국에서는 무농약 농산물을 원료로 한 제품은 차별화해서 살만한 가치가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농약 고춧가루가 보통 고춧가루와 같을 수 없다. 따라서 농산물과 마찬가지로 식품가공품도 저농약, 무농약, 전환기유기재배, 유기농으로 표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한국 농촌의 현실에 맞게 나아가다가 국내 친환경농업이 유기농으로 완전히 전환되었을 때 자연스레 국제표준을 따라가 주는 것이 농가도 살리고 소비자도 돕는 방안이 아닐까. 이것은 현재의 유기농산물 가공식품 자율표시제에서 의무표시제로 나아가기 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아울러 농산물을 농림부가 다루는만큼 농산물가공식품 역시 농림부가 다뤄주는 것으로 일원화해주길 농민들은 바라고 있다. 농산물 가공식품 가운데 전통식품은 농림부가 다루고 다른 식품은 보건복지부가 다루는 것은 행정의 중복투자가 아닐까.

hssu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