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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봉사하고 말없이 떠나… 소록도 벽안의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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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봉사하고 말없이 떠나… 소록도 벽안의 천사들

입력
2005.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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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아픔을 드릴 수 없어 말없이 떠납니다.”

한센병 환우들이 모여 사는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43년 간 봉사하다 21일 홀연히 본국 오스트리아로 떠난 마리안느(71), 마가렛(70) 수녀의 사연이 감동을 주고 있다.

두 수녀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아버렸다. 주민들은 소록도병원 치료소와 성당에 몰려 열흘째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들 ‘벽안의 천사’들이 소록도에 들어온 것은 1962년 6월. 그리스도왕의 시녀회 소속으로 간호사 자격을 가진 20대 후반의 두 수녀는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하루 하루를 나던 한센병 환우를 돕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이들은 당시 국내의 열악한 치료 여건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보내온 의약품과 지원금 등으로 온갖 사랑을 베풀었다. 환우들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등 헌신적인 치료 활동을 했다.

두 수녀는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하고, 물리치료기를 도입해 환우들의 재활의지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한센병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 등 정부도 나서지 않은 일을 척척 해냈다.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두 수녀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한글까지 깨치는 등 완연한 ‘한국 할머니’의 모습으로 변했다. 주민들은 그들을 “할매”라고 불렀다. 하지만 평생의 선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극구 꺼렸다. 그 동안 국내외 수많은 언론이 그들의 선행을 알리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지만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수 백장의 감사장과 공로패가 전달됐지만 되돌려졌다. 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이 이들이 받은 상훈의 전부였다.

두 사람은 떠나기 하루 전 병원측에 이별을 통보했다. 주민들에게는 아픔을 준다며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다. 갖고 간 짐이라곤 낡은 여행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편지에서 이들은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도 없고, 자신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며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미안함과 용서를 빈다”고 말문을 흐렸다.

그토록 큰 봉사와 희생을 한 평생 실천하고도 오히려 그 부족함을 말하는 두 수녀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 우리 시대에 진실로 필요한 크나큰 사랑이 느껴진다. 김명호 소록도 환우자치회장(56)은 “병마와 싸우면서도 두 수녀님의 천사 같은 웃음과 기도에 큰 희망을 얻었다”면서 “그들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고흥=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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