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정부가 똑 같은 시한폭탄을 손에 들고 고민에 빠져 있다. 째깍째깍 다가오는 것은 연금재정의 파탄.
낮아지는 출생률과 길어지는 평균수명,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금고가 바닥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해결방법은 가장 인기가 없는 정책, 즉 세금을 더 걷고, 연금을 줄이는 것 뿐이다.
유럽에서도 이 난제에서 자유로운 정부는 없다. 나라마다, 선거마다 연금개혁이 최대 정치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유럽의 국가연금은 활동인구 4명이 노령인구 1명을 먹여 살리기 때문에 근근히 유지되고 있지만 2050년에는 2명이 1명을 부양하게 된다.
특히 출산율이 낮은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비율이 1대 1에 달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50년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가재정 중 17~19%가 은퇴자를 위한 국가연금으로 지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어의 원조인 영국 노동당 정권도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늦춰보려고 안간힘이다.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은 베이비시터와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가정에 ‘유모세’를 물리는 방안이다.
28일 데일리텔레그라프에 따르면 베이비시터가 받는 임금 중 파운드 당 4펜스, 고용 가정은 파운드 당 3펜스를 세금으로 거둬 연금재정에 충달할 계획이다.
영국에선 이미‘연금 개혁부’라는 부처가 설치됐다. 국가는 기본적인 것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개인이 해결하는 토니 블레어 정부의 ‘생산적 복지’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이다.
영국의 개혁안은 저소득층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서 공적연금을 줄이고, 기업연금 등 민간분야를 활성화시켜 정부의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다. 2002년 구성된 ‘연금위원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연금개혁론자들은 호주의 경우 기업연금 가입율이 90%인데 비해 영국은 65%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연금위원회는 30일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연급수급연령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상향 조정하는 대신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국가기초연금의 최저 수급액을 주당 80파운드(약 14만원)에서 109파운드로 올리는 내용을 담을 계획이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복지를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가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며 1986년 사회보장법을 개정해 국가기초연금이 평균임금의 25%에서 20%로 떨어졌고, 95년 연금법 개정으로 여성의 연금수급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높아진 마당에 더 이상의 희생은 무리라고 아우성이다.
독일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신임 총리가 연금개혁을 통한 국가재건을 표방하고 나섰다. 연금지급연령을 현재 65세에서 67세로 늘리고 근로자의 노후연금 부담율도 0.4% 올릴 계획이다. 또 민간의료보험이나 기업연금의 비율을 늘려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한다.
심지어 복지 천국인 북유럽 국가들도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연금제도에 메스를 가하고 있다. 스웨덴은 국가연금에 확정기여형 도입과 부분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OECD는 가입 30여개국의 GDP 대비 연금 부담율이 현재 6.2%에서 2045년에 8%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OECD가 제시하는 해법은 공적연금에 의한 사회 안전망을 최소한으로 하는 한편, 기업연금, 개인저축의 3중 연금제도를 갖추는 것이다. OECD가 권고하는 국가·기업·개인 연금의 황금비는 40:30:30이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 미국의 제도 개혁
연금일부 사유화 부시정책 좌초 위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올해 초 집권 2기의 최대 과제로 내세웠던 사회보장 개혁은 1년도 안돼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부시 개혁은 지난 70년 동안 유지돼 온 공적 연금 제도 일부를 사유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전액 사회보장기금으로 적립되던 사회보장세의 3분의 1 정도를 개인의 희망에 따라 개인계좌에 적립토록 해 이를 증권 및 채권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현 제도를 그대로 두면 2042년께 공적연금 재정이 고갈되지만 개인계좌를 통한 개혁이 성공하면 정부와 기금의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퇴직 후 연금액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 취임 후 '60일간 60개 도시'를 도는 의욕 찬 개혁 세일즈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사회보장 개혁에 대한 지지율은 41%에서 33%로 오히려 하락했다.
민주당은 당초부터 "개인에게 위험부담을 전가하고 공적연금 혜택을 증권 투기로 대체하려는 것"이라고 반대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화당 내에서도 회의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데 따른 부담이 공화당을 짓누르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공화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 밖에 없다. 급기야 부시 대통령도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대한 열망이 수그러들고 있다"며 한풀 꺾인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미 의회에서 올해 내 공적연금 제도 개혁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기는 불가능하고 내년에도 전망은 밝지 않다. 머지 않은 장래에 연금 재정의 고갈이 불을 보듯 명확한 상황에서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는 셈이다.
워싱턴=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 일본의 제도 개혁
3분된 연금통합 정치권 뜨거운 감자
일본의 연금 개혁은 20년간 미뤄온 숙제다. 개혁만능주의자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조차 연금 개혁만큼은 최근까지 차일피일 미뤄왔다. 연금수령액 삭감과 부가세 인상을 통한 세수 확충 등 정책이 인기가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료 미납사태가 벌어지고 2007년부터 베이비부머인 이른바 단카이(團塊)세대의 정년퇴임이 시작되면서 연금개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지난 총선에서도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면 가장 시급한 개혁과제로 연금복지제도의 개혁이 꼽혔다.
현재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금 개혁의 화두는 '일원화'이다. 일본 연금제도는 자영업자 농가 주부 학생 임시노동자들은 국민연금, 직장인은 기초연금인 국민연금에 더해 후생연금, 공무원 역시 국민연금에 더해 공제연금에 각각 가입해야 하는 등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크게 국민연금 후생연금 공제연금으로 나눠진 세 종류의 연금을 어떤 식으로든 통합해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일찌감치 일원화를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을 주도해 왔다. 소극적이었던 자민당도 고이즈미 총리 주도로 일원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사실 일본 정부는 1984년 각의에서 '95년까지 연금을 일원화한다'는 방침을 결정하고도 손을 데지 못했었다.
자민당과 공명당은 지난해 국회에서 연금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나름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현역 세대의 부담증가와 ▦연금 수령액 삭감 ▦기초연금의 국고부담비율 인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은 연금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 법안의 심리 과정에서 거덜난 연금보험제도의 실상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고이즈미 내각의 상당수 각료들과 야당 대표 등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거나,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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