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올해 ‘사상 최고의 깜짝 실적’ 기대로 들떠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속빈 강정’이고 심지어 국가경제의 균형발전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 한국은행에서 제기됐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영업행태가 위험회피 및 수익만능주의에 빠져 금융의 공공성을 외면해왔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떼거리 행동(herd behavior)’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공론화한 것은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은이 꼬집은 주요 대목은 은행권의 총자산 대비 가계대출 비중이 1998년 11%에서 올 6월 32%로 급증한 반면 기업대출은 38%에서 32%로 오히려 줄었고, 특히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대출엔 인색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단기수익 위주 경영으로 19개 시중은행은 올들어 9월까지 10조5,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5%나 신장된 것이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 같은 실적은 부실여신이 줄면서 일회성 이익이 증가하고 대손충당금 환입액이 늘어난 덕분일 뿐, 수익성과 직결되는 이자이익 등은 제자리 혹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이는 은행들이 규모에 따라 역할을 나누지 못한 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이자 따먹기 식 가계대출에만 열을 올린다는 한은 지적과 맞닿아 있다. 그 결과 리스크 관리 등 선진금융기법을 이용한 고수익 지향의 영업모델이나 산업자금 중개라는 금융의 역할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다.
한은은 “개별은행의 후진적 영업행태가 단기 경영목표에는 부합하겠지만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금융안정성을 저해해 결국 은행의 건전성을 좀먹는 부메랑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회적 혜택을 누리는 은행권이 공공성을 배려한 특화된 수익모델 없이 눈앞의 과실 따먹기에 급급한다면 조만간 존립의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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