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깊은 늪에 빠졌다. 생방송 성기노출, 보도국 간부의 브로커비리 연루, 상주참사 등 잇따른 대형 악재에 휘청거리는 사이, 장기간 침체에 빠져있던 프로그램 전반의 경쟁력은 더욱 가파르게 추락했다.
‘PD수첩’의 황우석 교수팀 난자의혹 보도가 부른 국민적 반감과 무더기 광고취소 사태는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흔들리는 MBC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 됐다.
그 동안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 비판을 자제해온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 마침내 “도대체 경영진, 특히 최문순 사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 직원은 “최 사장이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MBC의 위기는 외형상 대형 악재들의 영향이 크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더 심각한 것은 바닥에 떨어진 프로그램 경쟁력이다. AGB닐슨에 따르면 지난 주 시청률 순위 20위권에 MBC 프로그램은 한 편도 들지 못했다.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드라마 시청률이 10% 안팎에 머물고 있고, 오락 프로그램은 전멸에 가깝다. 간판 뉴스인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KBS ‘뉴스9’에 더블 스코어로 밀리는 것은 물론, SBS ‘8뉴스’에까지 추월 당한 상황이다.
그 결과, 수 십년 간 지켜온 ‘광고주 채널 선호도 1위’ 자리도 흔들리고 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따르면 올 1~10월 MBC의 TV광고 매출액(본사 기준)은 4,33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690억원)에 비해 7.6%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SBS는 3.3% 줄었고, KBS는 1.6% 늘었다.
KBS도 지난해 638억원의 사상최대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 내내 경영혁신안을 둘러싼 노조와의 극한대립, 김모 PD 자살기도 등 각종 악재에 시달렸지만, 프로그램에 관한한 참신한 포맷 개발로 시청률 독주체제를 굳혀 위기관리 면에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시청률이란 부침이 있게 마련이지만 문제는 침체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8일자 노보에 실은 ‘최문순 체제 8개월 평가’에서 “파격적인 인사가 일 중심의 조직과 조직 활성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활기 저하라는 부작용만 나타났다.
파격적인 인사정책이 몰고 올 후폭풍에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한 PD도 “특히 제작 부문에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한 결과, 현장에서 뛰어야 할 사람이 ‘책상’으로 물러앉고 결국 가뜩이나 부족한 현업 인력이 더욱 감소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비판했다.
당장의 시청률 부침에 일희일비하는 안일한 대처도 문제였다. 한 직원은 “한, 두 프로그램이라도 선전을 해줘야 여유가 생겨 좋은 기획도 나오는 법인데, ‘내 이름은 김삼순’과 ‘굳세어라 금순아’가 떴을 때 내일에 대비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최 사장은 9월 초 노조와의 대화에서 뚜렷한 대책 없이 “시청률이 추석까지는 고전하겠지만 가을개편 이후 안정적 2위를 확보하고 내년에는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드라마-예능 양 국장을 교체하고 신종인 부사장에게 제작본부장을 겸직케 하는 궁여지책 끝에 내놓은 가을개편 성적표는 참담하다. 시청률을 의식해 편성에 무리수까지 뒀지만, 오히려 하락세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웃는 Day’와 ‘섹션TV 연예통신’ 시간대를 맞바꾸고 ‘뉴스데스크’에 앞서 방송하던 주말 ‘스포츠뉴스’를 원래 시간대로 되돌리는가 하면, 시청률은 낮지만 드물게 호평을 받은 ‘추리다큐 별순검’을 조기종영키로 한 것이었다. 근본적인 전기 마련 없이, 그간 경쟁력 하락의 한 요인으로 지적됐던 졸속기획-조기종영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씨는 “요즘 MBC는 새로운 시도에 걸맞은 전략도, 결과를 이끌어낼 뚝심도 없어 보인다”면서 “마음이 급할 법도 하지만 과실을 얻으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모든 걸 다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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