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에 지면 너도 친일파 된다’는 농담 한마디가 비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최근 친일파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3,000억 원대의 국유지를 지켜낸(한국일보 24일자 A8면 보도) 국방부 검찰단 윤찬영(30ㆍ중위) 법무관은 29일 “큰일을 해냈다는 자부심보다 힘든 숙제를 마친 홀가분한 심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들이 제기한 소송의 핵심은 인천 부평구 주한미군 캠프마켓 기지 일대 13만여 평의 땅을 돌려달라는 것.
이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옛 토지대장에는 이 땅이 송병준에게서 강모씨 등을 거쳐 국가(일본국)로 넘어간 것으로 돼 있지만 이는 1960~70년대 군사정권이 땅을 탈취할 목적으로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소유권 관계를 증빙할 수 있는 등기부등본은 한국전쟁 때 사라졌고, 남아 있는 것은 일제시대 토지(임야)대장뿐. 더구나 상대는 부동산 소송에 노련한 변호사들이었다.
2003년 단기 법무관으로 임관해 1년간 사단에서 근무하고 막 국방부 검찰단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송병준에게 땅을 빼앗겼다며 애국지사 민영환의 후손들도 소송에 가담해 송사는 난마처럼 얽혔다.
윤 법무관은 신중하고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한자와 일본어로 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현장조사에서 일제 당시 이 땅에 세워진 조병창(병기공장)에서 일했다는 80대 인사의 증언을 확보한 그는 권세가였던 송병준이 일제에 땅을 강탈당했을 리 만무하며 계약을 통해 소유권이 자연스럽게 일제로 넘어갔음을 확신했다.
올해 4월부터 시작된 변론에서는 원고를 친일파라고 몰아세우기보다 철저히 법리적 관점에서만 변론을 했다. 결국“일제 말기 송병준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부동산을 차례로 매각한 사실로 미뤄 조병창 부지도 매각을 통해 국가 소유로 넘어갔다”는 윤 법무관의 변론에 서울중앙지법은 “토지대장이 위조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고려대 법대 출신의 윤 법무관은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내년 3월 전역할 예정이다.
김정곤 기자 jk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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