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지면 간다.”
연세대 의대 소아과 김동수(52) 교수는 지진, 전쟁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어디든 가고야 만다. 이른바 ‘재난 전문 의사’다. 1999년 터키 대지진, 2002년 아프가니스탄, 20003년 이라크, 2005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지진해일)…. 대형 참사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지난달 파키스탄 대지진이 일어나고 이틀이나 지났을까요? 주변 분들이‘어, 아직도 안 갔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안 갈 수가 없네요. 허허. ”
김 교수는 99년 터키 이스탄불 대지진 현장에서 만난 부녀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한 아버지가 A형 간염 환자인 딸을 데리고 오더니 치료를 해달라고 통사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얼굴이 황달기로 누렇게 떠 있는 아이는 이미 치료시기를 놓친 듯했다.
“아버지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할 수 없어 기초적인 진료만 해주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가보니 아이가 빵을 먹고 있는 겁니다. 저도 의료진도 다들 깜짝 놀랐지요.” 처음에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던 소녀는 며칠 후 건강한 모습으로 진료캠프를 떠났다.
그는 떠나면서 아버지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인들은 우리의 진정한 주치의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손길에는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후 김 교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재난 현장과 자신이 필연적으로 맺어져 있다고 믿고 있다.
김 교수가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눈을 돌린 것은 7년 전인 98년. 의대 재학시절부터 주말마다 나환자 정착촌과 탄광, 농촌 의료 봉사활동을 했던 그는 89년 이 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제자들과 방학을 이용해 진료에 나섰지만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면서 전에 비해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크게 줄었다.
이런 차에 해외 의료 봉사 제의가 오자 주저 없이 나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10여 차례 재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30일 세계의사회로부터 ‘세계 참 의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김 교수는 고교시절부터 꼭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봉사하는 삶’에 대한 남다른 애착도 이미 그때부터 싹텄다.
“학교 교훈이 ‘크고자 하면 남을 섬겨라’였습니다. 섬기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린 생명을 살리는 그 자리에 내가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는 지금도 병원에 오는 어린이들을 환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공포감을 주는 흰 가운도 입지 않고, 침대 곁에 앉아서 다정스레 말을 건네며 진료를 한다.
“한국의 해외 의료활동은 제가 처음 시작하던 때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진료팀이 많아진 만큼 적재적소에서 최선의 진료와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치밀한 사전 준비와 역할 분담이 필요합니다.” 그는 이제 딸 규연(24ㆍ연세대 의대 본과 1년)씨와 함께 해외진료에 나설 꿈에 부풀어 있다.
한편 세계의사회는 한국의 유루시아(74ㆍ본명 유우금) 수녀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맘펠라 람펠레씨 등 총 55개국 65인 의사를 참의사로 선정했다.
유루시아 수녀는 20년간 케냐 등 세계의 오지에서 의료선교를 몸소 실천했고 이후 7년간 중국 지린(吉林)성의 의과대학 등에서 일했다. 현재는 서울 영등포의 무료자선병원인 요셉의원에서 극빈층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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