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속 인물들마다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손을 뻗으면 그 풍성한 양감을 느낄 수 있을 듯 입체감이 생생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인물의 음영이 변화하면서 표정이 살아있는 듯 움직인다.
그러나 부조처럼 보이는 것은 착시(錯視) 현상이다. 작품들은 돋을 새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화면 속에 움푹 패어 들어가 새겨져 있다. 이용덕(49ㆍ서울대 미대 교수)씨의 네거티브 조각 작품들이다.
그의 최근작 40여 점이 중국 베이징(北京) 한복판 중국미술관에 놓여졌다. 중국미술관과 표화랑이 공동 주최하는 ‘그림자의 깊이(Depth of Shadow)’ 초대전이다. 걸어 다니는 사람 작업을 주로 해오던 종전 작업에 비해 축구 하는 남자, 버스 기다리는 여자, 세수하는 남자 등 일상생활의 표현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해졌다.
그의 네거티브 조각은 대상을 사진 촬영한 뒤 이를 석고 조각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평면석고에 찍어 덩어리를 빼낸 뒤 남겨진 음각부분에 색을 칠해 완성된다. 너무나 현실감이 두드러져서 마치 레이저 광선을 이용한 홀로그램(Hologram) 상(像)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효과다.
“제 조각은 빼내고 남는 부분이지요. 그런데 보는 사람들은 ‘뺀 나머지’가 아니라 ‘그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없는 것을 보면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 살면서 그런 게 참 많지 않습니까? 음(陰)과 양(陽), 허(虛)와 실(實)이라는 동양철학적 개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음양과 허실이 결코 다르지 않고 분리되지도 않는 경지,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세계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 가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했어요. 그것을 생활 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단순한 행동을 순간 순간 포착해 표현할 다름입니다.”
‘허물 벗기’라는 제목의 독특한 ‘그림자 조각’도 인상적이다. 암실처럼 캄캄한 공간에 들어서면 어느 순간 터지는 불빛에 관람객의 그림자가 측광안료 를 입힌 벽에 3분여 동안 잔상을 남긴다. 어둠 속 그 부동의 그림자는 과연 나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인가.
27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예술품 경매에서도 이씨의 ‘두 여자(Two Girls)’가 26만4,000홍콩달러(3,500만원정도)에 낙찰되는 등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미술관 전시 후 내년 3월 마카오 미술관 초청전, 9월 상하이 다롄 미술관 전시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베이징=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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